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조차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다. 이제 인간의 평균수명은 70세를 넘었고, 한국인의 경우 83세 정도가 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먹는 물이 안전해지면서였다. 40세 정도였던 인간수명을 안전한 상하수도 시스템이 20년을 늘렸고, 항생제가 10년, 현대적인 의약품이 10년을 늘렸다고 한다. 수돗물은 그만큼 중요하고 필수적인 기반시설이다.
인천 상수도 유충사태가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지난 5월 말경에 '인천 적수사고 1주년 대책 이행과 보완 토론회'가 열렸다. 시민단체들이 주최하고, 환경부와 인천시 상수도 사업본부가 참여해서 수돗물 사고 재방방지 대책과 이행 현황을 설명했고 전문가들이 토론을 했다. 환경부는 사고 대응 전문기관 설립, 유역수도지원센터 설립, 수돗물평가위원회 역할 강화 등의 대책을 발표했고, 인천시는 민관 소통을 위해 ‘건강한 수돗물 만들기 위원회’를 발족하고 수돗물 시민평가단도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토론에서는 수돗물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나올 수 있는 대책들이 대부분 거론되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지난 뒤에 다시 작년과 유사한 형태로 수돗물 유충사고가 발생했다.
1년 전부터 수돗물 적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종합적인 대책을 발표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왔다. 그런데 1년 만에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조만간 환경부와 인천시는 사고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작년과 비슷한 종합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물론 이번엔 더 보완된 대책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대대적으로 도입하려는 정책에 대한 평가와 반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시설을 늘리는 것보다 운영관리 역량을 키우는 데 더 투자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반영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전문성과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지자체의 운영관리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전문기관이나 민간에 위탁하는 식의 정책 방향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작년보다는 더 나은 대책이 나오긴 하겠지만, 여전히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첫 번째는 이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설령 대책이 잘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돌아선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떨어진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책임을 묻는 사람들보다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유충사고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운영관리자의 실수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많다.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사람이 현장의 운영관리자나 인천시의 관련 담당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소위 물 전문가라고 하는 필자 같은 사람들, 수돗물과 관련한 기관들과 시민단체들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수돗물 사고가 나면 같이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위치에 있는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항상 책임지는 위치가 아니라 평가하고 질책하는 입장에 선다.
신뢰는 진정한 반성과 사과에서 출발한다. 조만간 있을 대책 발표에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련자나 책임자만 나오지 말고, 수돗물에 관련이 있는 전문가와 시민단체, 관련기관들이 함께 나서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각각 책임져야 할 일들을 약속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