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ㆍ월세 시장의 판을 바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을 최소 4년 유지할 수 있고, 임대인은 임대료를 기존 계약 대비 5% 이상 올릴 수 없는 내용이다. 여권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라고 강조하지만, 역풍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개정안을 불과 나흘 만에 국회에서 처리해 정부로 넘겼다. 국회가 개정안 심의에 투입한 시간은 144분.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보면 66분에 그친다. 정부는 31일 예정에 없던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의결하고 곧바로 공포ㆍ시행할 전망이다. 법안 발의부터 심의, 의결, 시행이 모두 속전속결이다.
민주당은 "워낙 시급한 법안이고, 이미 숱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미래통합당과 정의당은 "입법심사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 상정된 것은 이달 27일이다. 상정되자마자 국회 전문위원들이 약 6분 가량 법안 검토보고를 했다. 여야 의원들은 개정안을 제대로 토론하지 못했다. 아들 의혹 추궁에 격분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소설 쓰시네” 발언으로 회의가 파행된 탓이다.
29일 법사위에서는 여야 의원들 개정안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법안 내용과 직결되지 않은 의사 진행 발언부터 법안 찬반 토론까지 합해도 법안이 토의된 시간은 2시간에 그친다. 그나마 통합당 의원들은 여당의 법안 강행 처리 기조에 반발해 토론 도중 퇴장했다. 통합당 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시작된 법안 찬반 토론은 42분 만에 끝났다. 반대할 의원들이 없었던 탓에 '법안을 꼭 처리해야 한다'는 범여권 의원들의 의례적 발언만 오갔다.
국회 상임위의 법안 상정과 의결은 원래 이번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법안 제안 설명, 검토 보고, 대체 토론, 소위원회 회부, 축조 심사, 심사 보고, 찬반 토론, 의결 등 국회법은 복잡한 단계를 규정하고 있다. 법안을 '충분히, 신중하게' 심사하라는 취지다. '토론'을 핑계로 법안을 국회에 묶어 두는 것도 병폐이긴 하지만, 이번 임대차법 개정안 논의 과정은 극단적이라 할 만큼 지나치게 짧았다.
민주당은 연신 ‘시급성’을 강조했다. “심리가 좌우하는 부동산 시장 특성상 지금 과열을 잡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다”(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법안 논의를 오래 하면 집주인들이 전ㆍ월세를 올리기 때문에 법안 처리를 잠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 등의 주장을 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국회법 정신보다 시장의 시급성을 우위에 둔 것이다.
민주당은 ‘법안 논의가 충분했다’는 반론도 폈다. 20대를 비롯해 역대 국회에서 주택 임대차 제도 개정 논의가 지속적으로 있었고, 정부가 개정안을 오랫동안 연구 검토했으니, 21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다시 논의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통합당과 정의당은 궤변이라고 반박했다. 조수진 통합당 의원은 30일 국회 본회의 법안 반대 토론에서 “법사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기 직전에야 개정안 내용을 알 수 있었다”며 “다수결을 할 땐 하더라도 과정과 절차를 따르는 민주주의나 3권 분립은 어디로 갔느냐”고 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3차 코로나 추경안 처리 때도 모든 과정을 건너 뛴 민주당이 다시 국회의 입법 심사권을 증발시키고 있다”며 “국회 본회의장이 민주당 의원총회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개정안을 넘겨 받은 정부는 곧바로 시행에 들어갈 태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30일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법 개정안을 의결한다. 국무회의는 통상 화요일마다 열리기 때문에 다음 국무회의는 8월 4일에 잡혀 있었지만, "나흘도 기다릴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선택인 셈이다. 정 총리는 임시 국무회의 주재를 위해 지방 일정도 급히 취소했다.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 즉시 개정안을 공포하고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