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소문자는 하나의 기호에 하나의 낱소리를 짝지어 표기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기호의 음가를 익히면 제소리를 내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음소문자 체계를 사용하는 영어가 그렇듯이 한글 역시 낱소리의 음가대로 또박또박 읽으면 알아듣기 힘들다. 우리말은 그나마 다른 언어에 비해 철자별 발음에 규칙이 있는 편이어서 두음법칙, 구개음화 등 음운 현상들을 규칙화하여 표준어 규정 안에 표준 발음법을 마련하고 있다.
글자는 전승되면서 잘 변화되지 않으나 말소리가 변해서 굳어지면 결국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ㅸ’이나 ‘ㅿ’, ‘ㆍ’처럼 글자가 아예 소멸되기도 한다. 표준어 규정이 있는 오늘날은 옛날과 다를까? ‘ㅔ’와 ‘ㅐ’는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소리가 변하는 것을 음운변화라고 하는데 이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15세기에는 이 두 글자가 이중모음으로 발음되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지금 우리가 발음하는 단모음으로 바뀌었다. 이제 두 발음은 서서히 합쳐지고 있다. 글자는 바뀌지 않는데 그에 해당하는 말소리가 변하는 중이다.
이 현상은 국어학에서는 오랜 관심사였고 요즘은 컴퓨터 분석으로 그 변화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몇몇 실험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ㅔ’와 ‘ㅐ’의 발음 차이가 작다고 하니, 두 소리가 합쳐지는 현상이 지금도 시나브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구별해서 발음하지 못하다 보니 ‘ㅔ’와 ‘ㅐ’가 들어간 단어들은 외국인들이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외국인들은 우리말이 변했음을 먼저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