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 총량은 유지하되, 결정은 신속하게.’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1호 당론 법안으로 채택ㆍ발의한 ‘일하는 국회법’의 핵심이다. 국회를 상시 개최해 야당의 발목잡기에 따른 국회 공전을 막는 한편,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원회는 내실화해 입법 품질은 유지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최근 ‘7ㆍ10 부동산 대책’의 후속 입법을 상임위 심사도 건너뛰고 '군사 작전'처럼 밀어붙이는 과정은 이 같은 원칙과 거리가 멀었다. 정치권에서는 “숙의는 사라지고 독주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이 지난 14일 발의한 일하는 국회법의 골자는 ‘상임위 중심주의’다. 법안을 심의하는 소위원회는 상임위별로 2개 이상 운영하고, 법안은 제출 순서에 따라 심의하고, 소위를 통과한 법안을 의결하는 상임위와 본회의를 매달 의무 개최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29일 “여야 지도부 협상에 따라 법안의 향방이 결정되고, 정쟁이 벌어지면 상임위가 무기한 개점 휴업 하는 병폐를 해소하자는 것”이라며 “여야가 소위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한 법안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하지만 ‘상임위 복수 소위 체제’를 약속했던 민주당은 정작 7ㆍ10 부동산 대책의 후속 입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위 심사를 모두 생략했다. 민주당은 지난 28일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종부세 최고세율을 인상(3.2→6.%)하는 내용의 ‘부동산 3법’(소득세법ㆍ법인세법ㆍ종부세법)을 단독 상정한 뒤 표결을 강행했다. 국토교통위ㆍ행정안전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 위원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법안 처리가 불가능한 소위를 일부러 ‘패싱’한 셈이다. 통합당은 “날치기”라고 항의하며 퇴장했다.
민주당은 “소위는 거치지 않았지만, 법안은 충분히 심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심사는 졸속이었다. 기재위는 통합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2시간 30여분 뒤에 부동산 3법을 의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법안의 세부 조항을 심사하기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집값이 안정될까” “공급대책은 언제 나오냐” 등을 물었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그린 뉴딜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기재위가 수정 의결한 내용은 분양권을 주택 수에 포함하는 시기를 조정하는 것뿐이었다.
국토위 또한 통합당 퇴장 후 1시간 30여분만에 법안을 의결했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법안 심사가 아니라 토론”이라고 꼬집었다.
상임위 중심주의의 핵심인 ‘선입선출’(먼저 제출된 법안부터 차례로 심사)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기재위에 회부된 234건의 법안 중 부동산 3법만 ‘핀셋’ 상정했다. 통합당은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부동산 관련 법안 40건을 같이 논의하자”며 추가 상정을 요청했다. 통상 상임위는 세부 내용이 다른 관련 법안들을 일괄 상정한 후 조율을 거쳐 최종안을 도출한다. 민주당 주장대로 소위 구성이 어렵다면 이 같은 병합심사 방식으로 심의를 하면 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법안 처리의 시급성을 내세워 통합당 요구를 거부했다. 애초부터 심사보다는 '우리 법안'의 신속 통과에 방점을 찍고 있었던 셈이다.
민주당은 통합당 반대에도 국회법을 근거로 부동산 관련 법안을 상임위에 ‘기습’ 상정한 것도 꼼수 논란을 불렀다. 국회법 71조는 상임위 소속 위원이 법안 상정을 요구하고 1명 이상이 찬성하면 상정 여부를 표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태흠 통합당 의원은 “이 조항은 이미 회부된 안건 중 상정되지 않은 안건을 추가로 넣어달라고 할 때 준용하는 규정”이라며 “어떻게 이를 악용할 수 있느냐”고 했다.
실제 2016년 1월 당시 새누리당이 이 조항을 활용해 직권상정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운영위에 단독 상정했을 때, 민주당은 “불법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