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당국이 9월로 예정된 입법회(국회) 선거 연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겉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을 빌미 삼아 선거일을 미루려 하지만,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으로 반중(反中) 여론이 더욱 높아지면서 친중파의 참패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진짜 이유로 지목된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9일 홍콩의 실질적 내각인 ‘행정회의’가 전날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입법회 선거 연기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지속될 경우 람 장관에게 선거 연기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 여부에 관한 최종 입장은 입법회 선거 후보 확정이 마무리되는 31일 이후 열릴 행정회의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홍콩 내 코로나19 재확산세는 선거 연기를 고려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긴 하다. SCMP는 “28일까지 7일 연속 신규 확진자 수가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누적 감염과 사망은 각각 2,884명, 23명이다. 이에 홍콩 당국은 이날부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행동제한 조치를 강화했다. 2인 이상 모임과 식당 내 취식을 전면 금지하고 공공장소는 실내ㆍ외를 막론하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람 행정장관은 전날 밤 늦게 성명을 내고 “대규모 지역 감염이 우려되고 있다”며 “의료체제가 붕괴하고 고령자들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홍콩 민주파의 선거 승리를 막으려는 꼼수가 선거 연기 검토의 실질적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인 공민당의 제레미 탐 의원은 “현재 행정회의는 중국 중앙정부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며 “중국 측은 입법회 선거가 당초 일정대로 치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4년 ‘우산 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 전 데모시스토당 비서장도 “선거 패배를 두려워하는 친중파 진영이 코로나19 확산을 빌미로 선거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반 초이 홍콩중문대 정치학 교수는 SCMP에 “베이징은 야당이 입법회 다수를 확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선거를 철회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을 것”이라며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후 친중파 정치세력이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홍콩 민주파 진영은 지난해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의 여세를 몰아 지난해 11월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으며 이번 입법회 선거에선 사상 최초로 과반 의석을 노리고 있다. 전체 입법회 의석(70석)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자는 ‘35플러스’ 캠페인이 민주파의 핵심 선거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