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여당’이 가공할 위력을 과시한 하루였다. 28일 국회는 동시다발적인 '여당의 단독 법안 처리'와 '야당의 무력한 퇴장'으로 곳곳에서 얼룩졌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경보고서 채택과 '부동산 3법'의 상임위원회 처리 등이 야당 불참 속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만으로 상임위별 의결 정족수를 넘기는 ‘수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21대 국회 의석 300석 중 176석을 확보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속수무책이었다. 통합당 의원들은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어 “의회 독재”를 규탄했지만, 법안 처리를 막아 세울 방법은 없었다.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민주당은 7월 임시국회의 마지막 본회의(8월 4일)에서 부동산 대책 법안을 포함한 쟁점 안건을 최대한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회 혈전'이 열흘 가까이 이어질 것이란 뜻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7·10 부동산 대책 후속 법안인 ‘부동산 3법’, 즉 종합부동산세법ㆍ법인세법ㆍ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민주당의 단독 처리였다. 3법은 △3주택 이상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을 보유하면 종부세 중과세율을 최고 6%까지 올리고△법인의 주택 양도소득에 대한 법인세 추가세율을 현행 10%에서 20%로 인상하고 △다주택자의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 양도 시 중과세율을 10%포인트 끌어 올리는 내용이다. 통합당은 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강도질"로 규정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민주당은 '속도'를 명분으로 상임위별 법안심사 소위 구성과 소위 심사를 모두 건너 뛰고 부동산 3법을 기재위에 상정했다. 상임위 전체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땐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가 만장일치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 국회의 오랜 관행이지만, 이를 무시한 것이다.
기재위 소속 통합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의 하명에 따라 특정 법안만을 표결로 밀어 붙이겠다는 것”이라면서 “국회의 입법 심의권을 침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부동산 3법 단독 표결까지 곧장 강행했다.
닮은꼴 파열음은 국회 곳곳에서 전방위로 터져 나왔다. 국토교통위에선 전·월세거래신고제 도입을 위한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을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정부 역점 법안인 ‘임대차 3법’(전월세거래신고제ㆍ전월세상한제ㆍ계약갱신청구권제) 중 하나다. 또 부동산거래신고법, 공공주택특별법, 민간임대주택특별법,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등도 줄줄이 통합당 부재 속에 통과됐다.
행정안전위에선 조정대상지역 3억원 이상 주택 증여 시 취득세율을 크게 올리는 ‘지방세법 개정안’ 등이 역시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통합당은 “흉악무도한 의회 독재"라고 반발했다. 행안위 통합당 간사인 박완수 의원은 “지방세법 개정안은 지난 14일 접수돼 숙려 기간도 지나지 않았다"며 "여야간 충분한 논의도 없이 국민의 조세부담을 과중하게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도 민주당이 정보위에서 단독 채택했다. 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공개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면합의서’의 진위 확인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사실 여부도 모르는 문서”라고 일축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청문보고서 채택 3시간여 만에 박 후보자를 신임 국가정보원장으로 임명했다. 박 후보자 임기는 29일 시작된다.
이 같은 혈전은 29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회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추천 관련 규칙 개정안과 다른 부동산 법안 등이 '야당 패싱' 속에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전쟁 모드에 들어서면서 28일에 잡혀 있던 국회의장 주재 교섭단체 원내대표단 만찬은 취소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등을 국회의장 공관으로 초청해 국회 운영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