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팬심에 악덕 상술까지… 도 넘은 '스타 추종'에 철퇴

입력
2020.07.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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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시험에 유튜버 등장, 학부모 반발
미성년 팬클럽 ‘덕질’, 대리촬영 유착 변질
당국 "무분별한 배금주의 강력 처벌" 천명

"중국에서 리(李)씨 가운데 누가 가장 영향력이 있나요."

최근 중국 저장성 닝보시의 초등학교 6학년 기말고사 문제다. 출제 교사는 블로거 리즈치(李子柒)를 염두에 뒀다. 리씨는 유튜브에 1,100만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2,600만명 넘는 팔로워를 확보해 중국 최고의 인터넷 스타로 불린다.

상당수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으로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꼽는 현실의 반영이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가 "아이들의 연예인 추종 심리를 조장하는 얄팍한 작태"라고 비판하면서 웨이보 조회수가 며칠만에 4억5,000만건을 돌파하며 논란이 일었다.

여론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스타를 향한 청소년들의 소위 '덕질'이 도를 넘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 팬클럽은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에 영상광고를 싣고 런던 템즈강 상공에 열기구를 띄우는 등 거침이 없다. 2016년 중국 아이돌 가수 TF보이즈 멤버의 17번째 생일을 맞아 팬들이 베이징 국가수영센터 외벽에 설치한 전광판은 웨이보 리트윗 횟수가 4,277만6,438개에 달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당시 팬들은 생일잔치 비용으로 무려 100만위안(약 1억7,000만원)을 지불했다. 20대 여성 회사원은 차이나데일리에 "학창시절 연예인 관련 상품을 사는 데 매년 2만위안(약 340만원) 넘게 썼다"고 말했다.

이 같은 중국의 팬심은 심리적 만족을 넘어 불법 사행성 사업으로도 변질됐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한 동원 투표가 판을 치고, 팔로워와 댓글 숫자를 늘리려 데이터를 조작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팬클럽 간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면서 '안티팬에 맞서는' 규찰대 조직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악덕업체와의 검은 유착관계도 만연하고 있다. 여배우 양미(楊冪)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의 일상생활을 팬들 대신 촬영해 1장당 400위안(약 6,800원)에 판매하고 휴대폰 번호, SNS 아이디, 주소 등 개인정보를 300위안(약 5,100원)에 넘기는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지난해 상하이 훙차오공항에서는 대리촬영 업자들이 몰리면서 유리창과 출입문이 박살나고 항공기 출발이 지연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 13일 "미성년자가 분별없이 스타를 추종하고 배금주의를 숭상하며 돈에 집착하는 불량행위에 대해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팬심을 분출하기 위해 청소년들의 인터넷 접속이 증가하는 7, 8월 여름방학을 맞아 강력한 처벌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중국 미성년자는 1억7,500만명으로 인터넷 보급률은 도시(93.9%)와 농촌(90.3%) 가릴 것 없이 전체 평균(64.5%)을 크게 웃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에는 스타를 이상적 자아로 여겨 감정을 의탁하면서 동반자로 간주하는 심리가 강하다"고 조언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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