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쩌다 '서울 공화국'이 됐나

입력
2020.07.25 18:00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어떻게 변했길래
박정희 '강남신화'부터 박근혜 '가계부채' 대란까지



애쓰면 애쓸수록 논란만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정부가 6·17, 7·10 부동산 대책을 연달아 내놓으며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골몰하고 있지만, 성과는 잘 보이지 않고 나빠진 민심은 좀 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요. 다주택자·고가주택 보유자를 대상으로 한다던 규제가 서민·실수요자까지 압박하면서 국민의 불만이 커지는 겁니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다급하게 발표한 정부의 '땜질식 처방'이 독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죠.

역대 정부는 대부분 집값이 오를 때는 투기억제책을 쏟아내다가, 침체하면 부양책을 쓰는 정책을 반복했는데요. 부동산 투기를 막는데 매번 실패하면서 부동산 시장은 과열돼왔죠. 수도권 집값이 치솟을 동안 역대 정부에서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나라는 어쩌다 '서울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걸까요.


'강남신화'의 시작…정부, 최초로 '부동산 규제'



강남하면 부자동네. 집값 높고 학군 좋은 곳. 이런 인식은 언제부터 생긴 걸까요.

강남의 탄생 배경을 보려면 1966년 제3한강교(한남대교) 건설 때로 거슬러가야 합니다. 1960년대 서울은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시민들과 주택난으로 이미 포화상태였어요. 1966년 한남대교 공사가 시작되자 다음해 당시 박정희 공화당 후보는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죠. 경부고속도로로 한남대교가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진입 관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강남 개발이 이뤄집니다.

1971년 12월 강남 최초로 공무원 아파트가 건설됐고 이후 기업들이 앞다퉈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었어요. 70년대 초 강북에 있던 서울의 명문고로 불리던 공·사립 학교가 대부분 강남으로 이전되면서 학군도 형성됩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처음 개입한 것은 1967년 '부동산 투기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서입니다. 토지를 양도한 자에게 그로 인한 차익에 세금을 부과한 것인데, 일종의 양도소득세였죠.

박정희 정부가 목표했던 건 경제성장이었어요. 그래서 부동산 정책도 이에 맞춰 토지 개발에 초점을 맞춘 내용들이 나왔습니다. 1972~81년 전국을 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 등 4대강 유역으로 나눠 개발하는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도 추진했죠.


전두환 '오락가락' 정책, 부동산 가격만 올려



바통을 이어받은 전두환 정부는 투기 억제와 규제 완화를 반복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펼쳤는데요. 정권 초기에는 양도세 인하, 국민주택 전매기간 단축 등 규제 완화 정책을 펼쳤다가, 시장이 과열되자 2년 만에 다시 투기 과열지구 지정, 채권입찰제 등 투기 억제 정책을 내놨죠. 정부가 갈피를 못 잡는 사이에도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태우 정부는 투기 수요를 잡기 위한 정책에 집중했어요. 특히 공급 확대 정책과 규제 정책을 병행해 시너지 효과를 노렸는데요. 5개 신도시에 주택 200만 가구를 공급하는 동시에 민간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고 2주택의 과세를 강화했습니다. 개발이익 사유화로 인한 불로소득이 문제가 되자 1989년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제까지 세 종류의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죠.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는 부동산 거래에서 남의 이름을 빌려쓰는 것을 금지하는 부동산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전 정부의 기조를 이어갔어요.


김대중은 '부동산 띄우기'…노무현은 '투기와 전쟁'



외환위기를 안고 1998년 시작한 김대중 정부는 내수 경기 부양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동산 부양책을 실시했어요. 양도세 감면, 분양가 관련 규제 완화, 토지 거래 허가제 및 신고제 폐지, 취·등록세 감면, 분양권 전매 허용 등 굵직한 규제 완화 대책들이 쏟아졌죠.

하지만 경제 위기의 여파로 신규 주택 공급이 줄면서 2001년 부동산 투자 심리가 되살아났는데요. 투기가 과열되자 김대중 정부도 결국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국민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 등 주택 확대 정책과 투기과열지구 분양권 전매 강화 등 억제 정책이 나왔죠.

하지만 규제책이 너무 늦었던 걸까요.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부동산 시장은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어요.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강력한 대책들을 쏟아냈습니다. 공급의 문제보다 투기 수요를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보고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종합부동산세 도입 및 조기 시행 등을 추진했어요.

이어 2005년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 분양가 상한제 확대, 2007년 투기지역 민간분양가 상한제 및 원가 공개, 담보 대출 1인 1건 제한 등 강도 높은 규제 정책이 이어졌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비판만 남긴 채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지는 못했죠.


'빚내서 집사라' 박근혜 정부, 가계부채 불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은 정책이 이어졌습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양도세·종부세·상속세 인하 정책을 발표했어요. 여기에 서민을 위한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진행됐죠.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양적 완화를 시작으로 전세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어요. 서민들에게 '빚내서 집을 사라'고 독려한 것이죠.

이 덕분에 주택 거래는 늘어났지만, 문제는 가계부채였습니다. 2014년 1,089조원이었던 가계부채가 2017년 1,451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겁니다. 결국 정부는 같은 해 부랴부랴 1순위 청약 자격과 전매 제한을 강화한 11.3 부동산 대책을 만들었어요.

부동산 투기 근절에 강한 의미를 보인 문재인 정부도 오락가락 과거 정부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죠.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등 공급 대책을 이른 시일 내 마련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묘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논의했다가 논쟁만 낳았고,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과 인접한 육군사관학교를 연계 개발한다는 안도 결국 검토 안하기로 했죠.

홍남기 부총리는 20일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에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관계부처·기관들이 한 팀이 돼 7월 말까지 최대한 조속히 마련하라"고 말했는데요. 이번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소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