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5일 오후 4시40분 영국 런던 남부 핌리코에 위치한 한 주택 앞으로 경찰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거주자와 며칠 째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직장 동료의 신고가 접수돼 ‘안전 점검’ 차 들른 것이었다. 하지만 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이름을 여러 차례 불러 봐도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현관문을 통째로 들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 집에 사는 남성 개러스 윌리엄스(당시 32)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경찰은 단순한 변사(變死) 사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시신 형태가 문제였다. 윌리엄스는 화장실 욕조의 붉은색 스포츠가방 안에서 알몸으로 발견됐다. 더욱 이상한 건 가방 지퍼는 완전히 닫혀 바깥으로 작은 자물쇠까지 채워졌는데, 정작 열쇠는 가방 안, 윌리엄스 시신 아래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지, 타살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집 안도 열기로 후끈했다. 당시 바깥 기온은 21도로 포근했지만, 윌리엄스 자택 내부는 보일러가 최고 온도에 맞춰져 있었다. 시신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증거를 손상시키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놀라움은 끝이 아니었다. 윌리엄스의 신분이 영국 대외정보기구인 MI6 분석요원으로 밝혀진 것.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보도를 보면 웨일즈 북부 앵글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수학 영재’로 소문이 자자했다. 13세에 영국 수학능력시험 격인 ‘A 레벨’을 통과해 4년 뒤 뱅거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을 정도다.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재학할 때 이미 영국 3대 정보기관 중 한 곳인 정보통신본부(GCHQ)에 스카웃돼 암호 분석 전문가로 일했다. 2008년부터는 MI6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내성적 성격에 사이클광이었다는 주변 평판도 덧붙여졌다.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첩보원의 미스터리한 죽음은 단박에 대중의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수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통상 경찰이 변사를 처리하는 관행과 달리, 초기 수사는 대테러대책본부가 맡았다. 조사 과정에서 기밀 정보가 새어나갈지 모른다는, 망자의 직업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실제 사망 직전까지 윌리엄스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연방수사국(FBI)과 협업 중이었다. 미 국무부도 그가 다루던 업무 내용이 일절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MI6 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수사가 거듭될수록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졌다. 부검 결과 윌리엄스는 발견 일주일 전쯤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사체 부패가 심해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시신이 담겨있던 가방 지퍼, 자물쇠는 물론 욕실 어디에서도 지문은커녕, DNA조차 나오지 않았다. 제3자의 침입 흔적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유족은 경찰이 진입했을 때 현관문과 자물쇠가 뜯겨져 나간 점, 집 안이 이상하리만치 깨끗하게 정돈된 점 등을 들어 증거 훼손 가능성을 제기했다.
모든 게 수수께끼였지만 그 중에서도 최대 의문은 윌리엄스가 어떻게 가방에 들어갔느냐에 모아졌다. 제 발로 가방에 갇혔는지 타인이 집어 넣은 것인지, 또 죽기 전에 들어갔는지 사후에 옮겨졌는지 의문투성이였다. 시신 발견 직후 피오나 윌콕스 검시관은 “윌리엄스의 몸에는 부상이나 저항 흔적이 없었다”며 “알코올이나 마약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인과 사건 정황을 유추할 만한 단서는 전무했다. 수사가 얼마나 진척이 없었던지 런던 경찰청마저 “의문스럽고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규정했다.
얼마 후 경찰은 ‘사고에 의한 질식사’로 수사 방향을 잡았다. 윌리엄스의 행적에서 겨우 포착한 특이점이 단초가 됐다. 그 해 12월 경찰은 “사망자 데스크톱에서 ‘본디지(자신이나 남을 묶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행위)’ 전문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확인했다”고 공표했다. 그의 옷장에서 2만파운드(약 3,000만원) 상당의 명품 브랜드 여성복과 여성화 26켤레가 나왔고, 긴 머리 가발과 화장품도 다수 발견됐다. 전부 윌리엄스에게 딱 맞는 치수였다. 별난 성적 취향을 입증하는 근거들인 셈이다.
윌리엄스가 과거 첼트넘에서 10년간 세 들어 살았던 집 주인 부부의 증언도 사고사에 무게를 실었다. 2007년 어느 날 한밤 중에 “도와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윌리엄스의 방을 찾았더니 그가 속옷 차림으로 침대 기둥에 손을 묶은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부는 “윌리엄스는 결박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고 둘러댔으나 성도착증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유족은 강하게 반발하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유족 측 변호사 윌리엄 오툴은 “부부가 증언한 일은 윌리엄스가 MI6에 합류하기 직전 발생했다”며 “정보요원 선발에 필요한 준비과정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본디지 사이트 접속에 대해서도 “전체 인터넷 접속 시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경찰의 추가 발표가 나왔다. 또 그의 친구들은 집에서 발견된 여성의류 역시 체형이 비슷한 여동생에게 줄 선물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사고사가 맞다 쳐도 윌리엄스가 제3자의 도움 없이 가방에 들어가 지퍼를 잠그고 자물쇠까지 채우는 일이 가능하냐는 난제는 남는다. 키 170㎝, 몸무게 60㎏의 윌리엄스와 체구가 비슷한 요가 전문가가 같은 규격의 욕조 안에 동일 모델 가방을 놓고 400번 가량 ‘셀프 감금’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한 전문가는 “윌리엄스는 사망 후, 혹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제3자에 의해 가방에 옮겨졌을 것”이라며 “스스로 들어가 잠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탈출 마법의 황제) 후디니가 와도 애먹었을 것”이라고 사고사 확률을 낮게 점쳤다.
윌리엄스 사망사건은 ‘가방 속 스파이(spy in the bag)’로 불리며 영국에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그의 특수한 신분 탓에 2년 가까이 제대로 된 심리가 열리지 못했다. 2012년 5월 우여곡절 끝에 열린 검시 심리에서 윌콕스 검시관은 “윌리엄스의 비정상적인 죽음은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살해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윌리엄스의 시신이 든 가방을 욕조에 옮기고 자물쇠로 잠근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했다. 물론 근거는 없었다.
지지부진한 수사는 적대국 정보기관에 의한 암살설을 더욱 부채질했다. 특히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됐다. 2006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한 뒤 영국으로 망명한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런던에서 독살당한 사건이나 2018년 발생한 러시아 이중 스파이 부녀 공격 사례도 러시아 배후설에 힘을 보탰다. 일부 전직 정보요원들은 “다른 요원이나 배신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차원에서 윌리엄스를 죽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하원도 2018년 공개한 보고서에서 윌리엄스 죽음 뒤에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보고서에는 윌리엄스가 GCHQ 내 러시아 스파이의 신원을 알아챈 뒤 러시아 측의 이중첩자 제안을 거절해 살해됐다는 주장이 소개됐다. 더불어 그의 업무와 연관된 해외 범죄조직이나 갱단이 보복에 나섰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2013년 11월 영국 경찰은 “윌리엄스가 직접 가방에 들어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모호한 입장문만 내놓고, 3년여에 걸친 수사를 종결했다. 과정은 잘 모르지만 어찌됐든 사고사가 맞다는 것이다. 훈련된 전문가는 혼자 가방에 들어가 잠금장치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는 면피성 설명이 곁들여졌다. 하지만 마틴 휴잇 당시 런던 경찰청 부청장은 “많은 의문이 해결되지 못한 채 묻히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 스스로도 개운치 않은 마무리를 인정한 셈이다. 억울한 죽음인지, 호기심이 부른 참사인지는 윌리엄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