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천도는 성공할까… 수도 이전 논란의 역사

입력
2020.07.22 08:00
수도 이전 첫 주장은 1971년 김대중 대선 후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거치며 대전 정부 청사 완성
2004년 헌재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으로 주춤
이명박ㆍ박근혜 세종시 건설 두고 의견 대립하기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0일 “청와대와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부동산 문제로 나빠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사실상 '수도 이전'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데요.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 김두관 의원 등 여당 의원들도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수도 이전이 다시 한 번 정치권의 핵심 단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역사책에서나 본 듯한 '천도(수도이전)'는 현대사에서도 단골로 등장해 온 나라를 떠들썩 하게 했습니다.


첫 타자 DJ, 1971년 대선서 행정부 일부 이관 공약 제시


수도 이전 논란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는 “집권하면 대전을 행정 부수도로 정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1단계로 행정부 외청을 옮긴 뒤, 2단계로 일부 행정부를 옮기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이는 나중에 행정 부처 가운데 9부2처2청을 충남으로 옮긴다는 이명박 정부의 행정도시 원안과 비슷한 개념이었다고 하네요.

김 전 대통령의 ‘행정도시’ 계획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2월10일 서울시 연두순시에서 통일이 될 때까지 정부 기능을 수도권 남부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임시 행정수도’ 계획을 밝혔는데요. 당시 서울 인구의 과밀이 심각하니 이를 해결해 보자는 뜻도 있었지만 군사안보 상황도 감안했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0㎞ 거리 안에 있으면서 전 인구의 4분의 1, 그리고 군과 행정기관이 모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유사시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임시행정수도 건설 구상이 발표되면서 당시에도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지역은 부동산 투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박 전 대통령은 “10년 혹은 그 이상 걸릴 수도 있으며, 서두르지 않겠다”며 속도를 늦췄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기의 임시행정수도 안은 1981년 신군부에 의해 백지화됐습니다. 1981년 2월2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임시행정수도를 유보했지요. 하지만 4년 뒤 1985년 전 전 대통령이 행정기관 일부를 대전으로 옮기는 ‘중앙행정기관 및 외청배치계획안’을 추진합니다.

이후 1989년 6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행정부처 이전을 위해서는 부처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대통령비서실에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을 띄웁니다. 노 전 대통령의 의지는 이듬해인 1990년 11개 청의 대전 이전 계획안 탄생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대전 청사는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인 1993년 9월에 착공, 97년 완공됐고 이듬해인 98년에는 병무청과 통계청 등 일부 정부 기관이 이전을 완료했습니다. 일부이긴 했지만 정부 기관이 서울을 처음으로 이전한 것이죠. 이어 김대중 정부는 중앙행정부서 권한을 지방으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참여정부때 가장 강력히 수립된 행정수도 이전 대책


역대 정부의 행정도시 건설 실패의 경험을 모아 가장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 참여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14일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을 만들고 신행정수도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는데요. 중앙정부의 18부 4처 3청 등 74개 기관을 이전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과감하게 행정수도건설을 밀어붙였습니다.

이후 2004년 1월 29일에는 대전에서 국가균형발전선언 기념식을 갖고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지방분권특별법, 신행정수도특별법 등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3대 특별법'을 공포하게 됩니다. 하지만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신행정수도는 좌절됩니다. 대신 행정중심도시와 다기능복합도시를 합친 현재의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로 규모가 확 줄어들고 마는데요.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신행정수도를 강하게 반대했는데요, “수도 이전은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는 발언도 이때 나왔지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당선되자 “세종시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힙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행정수도가 아닌, 경제·교육도시로 수정하려고 했지만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원안대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7월 1일 세종시가 독립 광역자치단체로 탄생하고, 그 해 9월 14일 국무총리실의 이전을 시작으로 중앙행정기관이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기준 세종시에는 22개 중앙행정기관과 21개 소속기관이 자리잡고 있고, 관련 직원만 1만6,47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진보정부는 지역균형발전, 보수정부는 지역경쟁력 강화


한편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하 균특법)이 제정된 이후 2009년, 2014년, 그리고 2018년에 새로운 정부의 출범에 따라 세 번의 전면적 법 개정이 있었는데요.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정책실장은 2018년 11월 발표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변천과 발전방향’을 통해 “진보정부인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지역균형발전을,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역 경쟁력과 주민의 삶의 질에 초점을 둔 지역발전을 강조한 특징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번에는 여당 의원들이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 개정 사항이라는 말이 있지만, 법률로도 가능하다. 헌재에서도 여의치 않다면 개헌까지 가야 한다”며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있는데요. 40년에 걸쳐 논의가 이어져 온 수도 이전, 수그러드나 했던 뜨거운 논란 거리가 이번에는 어떤 결론에 이를 지 궁금해 집니다.

고은경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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