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의외의 관전포인트? 유명 래퍼 칸예 웨스트 출마

입력
2020.07.22 08:30
트럼프 열성 지지자서 경쟁자로…"빨간모자 벗었다"
"당 이름 '생일파티'"…황당한 언행에 유권자들 헷갈려
일부선 "민주당 흑인 표 분산시켜 트럼프 도우려"

"진짜일까? 쇼일까?"

유명 래퍼 칸예 웨스트가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면서 나오고 있는 반응입니다. 2004년 '더 칼리지 드롭아웃(The College Dropout)'으로 데뷔 후 100만장 넘는 앨범 판매 행진을 이어나가며 미국 최고 대중음악상인 그래미 어워즈에서만 21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힙합계의 거물이죠. 래퍼로서는 물론 음반제작자, 디자이너로도 성공한 그가 이번엔 대통령에 도전한다고 하는데요.

웨스트는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2020VISION' 해시태그와 함께 "우리는 이제 신을 믿고 목표를 통합해 미래를 건설함으로써 미국의 약속을 실현해야 한다"며 "나는 미국 대선에 출마한다"라고 출사표를 던졌어요. 대중들이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19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운집한 수백 명의 지지자 앞에서 공식 유세에 나서기까지 했는데요.

원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열성 지지자였다고?

그는 사실 과거부터 대선 출마를 암시해왔습니다. 2015년 8월 MTV VMA(Video Music Awards) 시상식에서는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차차기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죠. 지난해 1월 1일이 되자마자 역시 본인의 트위터에 "2024"라는 단어를 남겨 향후 대선 출마를 암시하기도 했고요. 같은 날 "언제나 트럼프(Trump all day)"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원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후 나설 생각이었던 걸까요?

웨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쓰고 그의 집무실을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미국 흑인 대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과는 반대 행보죠. 또한 "흑인 90%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그건 내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트럼프 대통령도 웨스트에게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화답했고요.

근데 대선에서 경쟁한다고? 둘이 싸운 거야?

이렇게 사이가 좋았던 그들이지만 최근 많이 소원해진 것이 웨스트가 이번 대선에 출마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웨스트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나는 빨간 모자를 벗었다"며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5월말 백악관 근처 시위를 피해 지하벙커에 은신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이 벙커에 숨는 게 싫다"고도 지적했죠.

최근에는 인종차별 항의시위인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에 참여하고, 공권력을 이용해 집회를 진압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며 공화당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워싱턴포스트는 20일 수십년 동안 지지한 기존 민주당에게도 역시 실망해오던 흑인들의 마음이 웨스트에게로 움직여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의외의 '캐스팅보트'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을 와칸다로" "아기 낳으면 12억원" 혼란하다, 혼란해

그러나 웨스트는 기자 아버지와 교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중산층 출신으로 흑인 사회에선 소수계층에 해당하는데요. 성공해 막대한 부까지 얻어서인지 그는 2018년 "400년씩이나 흑인들이 노예생활을 한 것은 선택"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흑인들은 민주당을 떠나라"며 영국 브렉시트를 패러디한 '블랙시트(Blaxit)'라는 문구가 적힌 셔츠를 판매하는 등 다수 흑인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 하고 반감을 가질만 한 행동을 일삼아왔죠.

이번 대선 출마를 두고서도 미국 사회가 '홍보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겠죠. 그는 "아기를 낳는 모든 이는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받을 수 있을 것", "백악관 조직을 (마블 영화) '블랙팬서'에 나오는 '와칸다'처럼 바꾸고 싶다" 등의 공약을 했는데요. 자신이 만들 새로운 '당(Party)' 이름을 '생일 파티(The Birthday Party·약자 BDY)'라 짓는 등 다소 황당한 언행을 이어가며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전폭 지지", 한편에선 "그럼 나도 출마" 비아냥

미국 유명인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우선 웨스트의 출마선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이 있는데요. 아내인 모델 킴 카다시안은 그의 출마선언을 리트윗하며 미국 성조기를 함께 올려 응원의 뜻을 나타냈고, 테슬라와 스페이스X CEO인 일론 머스크는 "전폭 지지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NBA 농구선수 카일 쿠즈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번 선거에서 농담하는 사람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작가 돈 윈슬로는 "나는 칸예 웨스트가 핫도그 매대를 운영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그는 땅콩버터잼 샌드위치도 망칠 사람"이라고 비판했어요.

코미디언 티파니 해디쉬는 웨스트가 올린 트윗 문구와 해시태그를 그대로 자신의 계정에 인용하며 "나'도' 미국 대선에 출마한다"고 비꼬기도 했고요. 배우 찰리 로즈는 "거지같은 한 해의 정점"이라고 빈정댔죠. 웨스트의 아내 카다시안의 친구였던 패리스 힐튼은 "패리스를 대통령으로"라며 "타원형 대통령 집무실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까"라고 농담을 던졌어요.

배우 출신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여론조사서 트럼프 앞선 '드웨인 존슨'

연예·스포츠계 인사들의 대선 출마 선언은 눈길을 끌 수밖에 없죠. '다이하드2' 등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프레드 톰슨은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테네시주 상원의원을 지낸 후 2008년 공화당 경선 출마를 선언했는데요. 낮은 지지율로 4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습니다. 성공사례도 있어요. 영화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은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미국 40대 대통령으로 당선,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재임했죠.

배우 안젤리나 졸리, 린제이 로한 등도 대선 출마 관련 발언을 해 주목받은 바 있는데요. 프로레슬러 출신 배우 드웨인 존슨은 2017년 코미디 프로그램 'SNL'에서 "2020년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어요. 그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려는 캠페인이 벌어졌고,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번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선다면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죠. 다만 존슨은 "시기상조"라 일축했지만요.

당선 가능성 없는데 왜…혹시 다 계획이 있는 걸까?

가장 적극적인 웨스트는 어떻게 될까요? 사실상 정식 대선 출마라 볼 순 없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4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을, 민주당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이미 후보로 내세우고 있는데다,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려면 기한 내에 주정부별로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웨스트는 이미 뉴욕, 인디애나, 텍사스, 네바다 주 등에서 마감 시한을 놓쳤습니다. 그래도 오클라호마주에는 후보로 등록한 상태죠.

이런 그의 당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높은 화제성이 선거 판도를 바꾸는 변수는 될 수 있단 예상도 나옵니다. 일부에선 민주당 흑인 표를 분산, 공화당에 유리하게 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죠. 미국 대선은 인구 비례에 따라 주 별로 선거인단을 뽑고, 각 주에서 승리한 이가 해당 주 선거인단 머릿수를 독식하는 구조인데요. 전체에서 따졌을 때는 지지율이 미약하더라도 개별 주에서 웨스트의 개입으로 인해 미세한 차이로 1, 2위가 뒤바뀔 수 있다면 주 선거인단 수 전체가 움직여 결과적으로 큰 표차가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웨스트의 출마에 따른 역학구도의 변화도 이번 미국 대선의 관전포인트가 된 셈인데요. 과연 그는 완주할 수 있을까요. 또 그 결과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이유지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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