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아닌 섬...불편해도 괜찮아, 첫 번째 여름이니까

입력
2020.07.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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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안면도에서 바로 가는 보령 원산도

지난해 12월 26일 또 하나의 섬이 사라졌다. 태안 안면도에서 보령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 개통으로 충남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큰 섬이 찻길로 연결됐다. 안면도는 이미 1960년에 육지와 연결됐다. ‘원산안면대교’라는 명칭은 정직하지만 건조하다. 태안군은 ‘솔빛대교’, 보령시는 ‘원산대교’를 제시했고, 충남도가 ‘천수만대교’를 중재안으로 냈지만 끝내 합의를 보지 못한 결과다. 섬 아닌 섬으로 첫 번째 여름을 맞는 원산도는 조금 어수선하고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원산도는 변신 중… '앙트랑' '하나시'는 옛 모습 그대로

1.75km 원산안면대교를 건너면 가장 먼저 차량에 앉은 채로 발열 검사를 받는다. 이상이 없으면 손목에 차는 파란 리본을 나눠 준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해수욕장 방역 지침에 따른 조치다.

리본과 함께 관광 안내 책자도 제공하면 좋겠는데, 섬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섬에서 대천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운항(하루 3회)하는 선촌항과 저두항 두 곳에 대형 안내판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찾아가고 싶은 섬, 원산도 관광안내도’에는 아직 첫 삽을 뜨지도 않은 대형 리조트까지 표시돼 있다. 미래의 기대까지 담겨 있으니 온전히 믿기 힘들지만 섬의 대략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깔끔하게 그려진 지도와 달리 원산도에선 아직 불편한 게 많다. 다리가 개통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섬 안의 도로는 이제야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1,100명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던 마을 간 도로를 넓히는 중이다. 보령 대천항까지 연결되는 해저터널 공사도 내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원산도는 아직까지 대체로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변화는 편의점이 2개 들어섰다는 것이다. 하나는 기존 동네 슈퍼마켓이 간판을 바꿔 달았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새로 생겼다. 섬의 행정중심이라 할 선촌마을에는 짧은 구간에 해안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선착장 북측 언덕을 넘는 길이다. 보라색 도라지 꽃이 곱게 핀 산책로에서는 천수만의 푸른 바다와 작은 섬들이 내려다보이고, 길이 끝나는 바닷가에 다다르면 원산안면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가 길어진 여름이면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일몰이 아름답다.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는 이곳 바다는 ‘앙트랑’이라 불린다. 외래어처럼 들리지만 섬에서 예전부터 불러 온 순수 원산도 지명이다. 유래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지만 ‘안쪽 뜨락’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조개가 많이 잡히는 반 갯벌 바다는 마을에 딸린 텃밭이나 마찬가지다. 남들 눈에 띄지 않은 뒷마당처럼 아늑하고 평온하다. 길이 끝나는 지점은 ‘하나시’다. 오래전에 세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섬 속의 외딴마을처럼 바닷가에 집 한 채만 동그마니 남아 있다. 선촌항 주변 도로에선 자전거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환하고, 좁은 바다 건너 효자도 어촌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다.



섬에서 나고 자란 장갑두(54)씨는 “개인적으로 원산도가 계속 섬으로 남아 있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원산도관광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사람의 발언으로는 의외였다. 인심이 예전만 못해졌다는 이유를 첫 번째로 꼽았다. 전에는 섬 주민들이 개인적인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모두가 대문을 열고 지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다리가 놓인다는 소식이 있고부터 육지 사람의 토지 매입이 꾸준히 늘어 이미 섬의 70%는 외지인의 손에 넘어간 상태라고도 했다. 또 다른 걱정은 섬에 쓰레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전국의 관광지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골칫거리다. 그럼에도 장씨는 “개발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주민들이 먼저 행복한 관광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무국장 업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말 달리던 해변…고운 모래, 황홀한 노을

충청도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넓다지만 원산도는 동쪽 끝 저두항에서 서쪽 끝 초전항까지 7km남짓한 작은 섬이다. 그럼에도 천수만 초입에 위치해 오래 전부터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섬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세종 7년(1425) 제주에서 생산된 말 56필을 원산도에 방목해 번식시키고, 고만도(원산도의 옛 지명) 만호에게 그 일을 살피게 청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현종 10년(1669)에는 원산도 목장의 말을 대산곶으로 옮기고 충청 수군 우후(수군절도사를 보좌하는 무관 벼슬)를 진주시켜 조선(漕船)이 올라올 때 점검하게 하자는 건의도 있었다. 지금은 말 목장과 군영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오봉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남아 있지만 이마저도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은 상태다.




기독교에서는 원산도를 국내에 개신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곳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1832년 7월 25일 독일 태생 카를 귀츨라프 선교사가 조선에 첫발을 들인 곳이 이 섬이기 때문이다. 점촌마을 원의중학교(폐교) 인근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동서로 길쭉하게 생긴 섬의 북쪽엔 갯벌이, 남쪽엔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다. 관광안내도에는 5개 해수욕장이 표시돼 있는데 실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원산도해수욕장과 오봉산해수욕장 2곳이다.






원산도해수욕장은 소록도라는 작은 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1.8km 뻗어 있다. 섬의 규모에 비해 길기도 하지만 물이 빠지면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진다. 아직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아 텅 빈 해변이 더욱 한가롭게 보인다. 바다 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서해 최대 대천해수욕장과 대조적이다.

물속에 풍덩 뛰어드는 것도 좋지만, 발목에 찰랑거릴 정도로 얇게 번지는 바닷물 위로 걷는 것도 낭만적이다. 차가운 물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더위에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모래는 한없이 고와 한 움큼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솔솔 빠져나갈 정도다. 바닷물도 서해 해수욕장으로는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소록도 바위 주변에선 어린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넓은 해변에 모래 다음으로 흔한 게 조개껍데기다. 해변 산책에 나섰다가 예쁜 조개껍데기에 한눈을 팔기 일쑤고, 운이 좋으면 살아 있는 조개를 주울 수도 있다.

원산도해수욕장 주변엔 아직까지 숙박업소나 가게가 없다. 해변 가장자리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고, 주차장에 주전부리를 판매하는 이동 매점이 영업 중이다. 오봉산해수욕장은 원산도해수욕장의 절반 규모지만 안전요원이 배치돼 있고, 주변에 10여개의 펜션이 몰려 있다. 해 질 녘이면 해수욕장과 건너편 삽시도 사이 바다가 붉게 물든다.




요즘처럼 해가 길어진 여름에 일몰을 보기 좋은 곳은 원산안면대교 다리 위다. 교량 중간에 차량 서너 대를 댈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시루섬, 고대도, 장고도 등 원산도에 딸린 작은 섬들 뒤로 붉게 떨어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원산도(보령)=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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