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부터 극비까지... 김정은의 회의실 부심

입력
2020.07.20 21:00




북한이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군 수뇌부의 비공개 회의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전쟁 억제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회의 장면에서 단연 관심을 끈 것은 최초로 공개된 회의실 내부 시설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모니터 여러 대가 회의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모습은 청와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실과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공개 회의가 NSC와 비슷한 성격을 띤 것으로 알려진 만큼 김 위원장이 유사시 긴급하게 상황 보고를 받거나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장소로 추정된다.

북한이 이 같은 극비 회의장을 공개한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대의 모니터가 벽처럼 둘러 설치된 회의장에서 군 수뇌부가 김 위원장의 지시를 받는 모습을 통해 외세의 무력 시위 등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한 것은 아닐까.




사실, 북한은 이번 비공개 회의 장면 외에도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에 있는 다양한 회의실 모습을 언론을 통해 공개해 왔다. 일반적으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나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확대회의 등 김 위원장이 주재하는 공식 회의는 대게 평양의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열린다. 북한이 최근 몇년간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한 주요 회의 장면을 보면 거의 매번 다른 방에서 회의를 열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지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공개된 방까지 더하면 김 위원장이 평상시 사용하는 방은 최소 20여 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수백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강당 형태의 대규모 회의실부터 좌석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강의실 모양의 회의실, 참석자들이 빙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회의실이나 벽에 대리석을 붙인 회의실 등 다양하다. 지난해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그의 집무실로 알려진 고급 서재 컨셉트의 방에서도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열렸다.



사실, 우리 정부 청사나 국회의사당을 떠올리면 방이 많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대다수 사무실과 회의실의 색깔이나 내장재를 동일한 컨셉트로 마감한 것에 비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김 위원장이 회의실로 쓰는 방들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꾸며놓았다. 각 회의실마다 벽이나 천정의 마감재와 모양이 다르고, 당 깃발이나 엠블럼, 김씨 삼부자의 그림 등 상징물의 배치도 회의실마다 변화가 있다.

더구나 이처럼 각각 다른 분위기의 방 수십 개를 최고지도자가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는 점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청와대 본관과 여민관에서 국무회의 또는 수석ㆍ보좌관회의를 여는 회의실이 정해져 있다. 이처럼 고급스럽게 꾸민 다양한 회의실을 보여줌으로써 김 위원장의 지도력과 권력 장악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 수준에 비해 과도한 사치가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은 회의실 선택을 통해 현명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과시하기도 한다. 지난 6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차 13차 정치국 회의는 원형 회의실에서 참석자 30여명이 원탁에 둘러 앉았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받아 적는 방식을 탈피하고, 수평적 소통을 시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반면, 회의실 분위기를 바꿈으로써 강력한 지도력과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건강 위중설’이 불거진 지난 5월 잠행 3주 만에 등장한 김 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높은 무대가 있는 회의실에서 열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무대 위에 꼿꼿하게 선 채로 긴 지시봉을 들고 북한군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지시와 설명을 이어갔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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