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19일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지만, 사과 수준에 머물렀다. 정 총리는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재발을 막기 위해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3일 피해자 측이 실체 규명과 수사 정보 유출ㆍ서울시 방조 의혹 수사 등을 요구한 지 엿새 만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개인적인 비위 의혹이 아니다.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이 재임 중 4년에 걸쳐 성추행과 성희롱을 저질렀고, 정무라인을 포함한 참모진이 방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다. 고위 공직자 성범죄 예방 노력, 발생 시 사후 조치, 재발 방지 대책 등 구조와 제도 측면에서 접근이 필요한 사안인 것이다.
더구나 이 사건을 둘러싼 세 갈래 의혹 규명은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상황이다. 서울시의 민관합동조사단은 여성단체들이 불참해 난항을 겪고 있다.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했다는 의혹을 받는 서울시가 조사의 주체가 되는 건 애초 어불성설이다. 경찰은 수사의 핵심 증거인 박 전 시장의 휴대폰 3대에 대한 통신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당했다. 애초 신청 사유를 타살 의혹 등 사망 경위에 맞춰 부실하게 적은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검찰대로 수사 정보 유출건을 직접 수사할지, 경찰에 넘겨 지휘할지 고민 중이다.
결국 이 혼선을 정리하려면 청와대의 의지 표명이 불가피하다. 청와대가 나서서 성추행의 진상은 물론, 부수적으로 제기된 두 의혹까지 투명하고도 엄중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는 게 수사기관의 부담을 덜어 주는 일이다. 수사 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해선 청와대 관계자가 비공식적으로 박 전 시장 측에 이를 알렸을 가능성까지 열어 둬야 하기에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하다. 특히 연달아 발생한 여당 소속 단체장의 성폭력 의혹을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음을 청와대는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