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그럴 사람 아니다'...입닫게 만드는 '2차 피해'

입력
2020.07.20 10:30
"부정적 반응 등으로 인해 또다시 겪게 되는 어려움"
여가부 '2차 피해' 정의...피해자 27.8%가 경험
피해자 좌절시키고, 또 다른 피해자 침묵시켜
"피해 호소인' 지칭도 본질 흐리려는 시도


"피해자는 왜 4년 전 성추행을 당했을 때 고소하지 않았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질문 중 하나다. 20일 여성계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의 전직비서였던 A씨는 지난 8일 4년간 박 전 시장에게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시달려왔다며 그를 경찰에 고발했다.

A씨가 첫 피해를 입은 당시에 바로 고발 절차에 돌입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2차 피해' 때문이다. 지난 13일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가)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주위에서)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단순 실수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피해를 축소하는 발언이 이어져 더이상 발언을 못할 상황이었다"고 말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A씨가 부서이동을 거듭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도 같은 맥락이다.

2차 피해는 피해자를 좌절시키고, 또 다른 피해자들을 침묵하도록 만든다. 피해 사실을 어렵게 털어놔도 신원파악, 인신공격의 대상이 되기 일쑤여서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고, 이를 목격한 다른 피해자들이 폭로를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를 피해자가 당하는 또 다른 '피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주로 '너 하나만 입 닫으면 조직이 안전하다', '너도 원인을 제공했지 않느냐'는 등의 인식이 깔려있는 것인데,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조직에 해를 입히는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기재가 된다.

2차 피해는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옥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여가부는 2차 피해를 ‘피해 경험에 대해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이나 행동 등으로 인해 또다시 겪게 되는 어려움’으로 정의했다. 세부적으로 △주변에 성희롱 피해를 말했을 때 공감이나 지지받지 못하고 의심 또는 참으라는 얘기를 들었다 △부당한 처우에 대한 암시,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발언 등으로 성희롱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 했다 △기관장(사업주)이나 상급자가 조사 과정에서 행위자 편을 들거나 불공정하게 진행했다 △비밀보장에 소홀하거나 일부러 공개해 나(피해자)의 신상이 드러났다 △나의 의사에 반해 행위자와의 합의를 강요했다 △행위자에게 경징계만 내리고 사건을 종료했다 △나를 문제유발자로 낙인 찍고 왕따 시켰다 △다른 유사사건이 생길 때마다 계속 나를 거론하였다 △나에게 퇴사를 유도, 강요했다 등이다. 당시 조사결과 9개 문항 중 하나라도 경험한 비율은 피해자의 27.8%였다. 2차 피해를 유발한 행위자는 동료(57.1%), 상급자(39.6%) 순이었다. A씨가 겪은 사례도 예외가 아니었고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공론화되면서 신분 노출, 비방과 억측 등이 난무하면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되는 것도 A씨에게는 ‘2차 피해’다. 통상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수사를 요청한 사람을 ‘피해자’라고 불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서울시는 지난 16일까지 그를 ‘피해 호소인’으로 칭했다. 행위자(박 전 시장)가 고인이 되면서 해당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돼 진상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인데, 여성계는 이 용어가 사실상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을 깔고 있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비판이 지속되면서 민주당은 사과와 함께 ‘피해자’로 바꿨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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