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성폭력에 맞선 젠틸레스키

입력
2020.07.16 14:00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유혈이 낭자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과 연관되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그림이다. 젠틸레스키 자신도 성범죄의 피해자였다. 그는 17세 때, 아버지의 동료이자 그림 선생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이를 고소해 당시 로마시를 떠들썩하게 한 7개월간의 길고 힘겨운 재판을 받았다.

유디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대의 아름다운 과부로서, 조국을 점령한 아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후 목을 베어 나라를 구한 여성 영웅이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에서는 근육질의 팔뚝으로 표현된 강인한 육체적 힘과 정신적 의지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의 중심에 위치한 검을 쥔 유디트의 주먹과, 하녀의 팔에서 칼, 침대 가장자리에 흘러내리는 피까지의 수직선은 남자를 처단하는 여성의 강력하고 단호한 힘을 상징한다.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 사실주의적인 세부 묘사로 인해 방 안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살인은 더욱 극적으로 연출된다. 특히 홀로페르네스의 목에서 격렬하게 분출되는 핏줄기는 섬뜩하기만 하다.

미술사가들은 검붉은 피로 범벅된 이 살벌한 그림이 그의 개인적 경험, 즉 타시의 성폭행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에서 결과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유디트의 얼굴이 젠틸레스키 자신의 모습으로, 홀로페르네스는 타시의 얼굴로 그려진 것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여성에게 가혹했던 가부장 체제 성문화의 희생자이자 사회적 약자였던 젠틸레스키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무기는 붓이었고, 그는 그림에서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에게 잔혹하게 복수했던 것이다. 젠틸레스키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그려진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보면서 요즘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터지는 성범죄 사건들을 생각하게 된다. 손정우, 조주빈,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에서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인 안희정, 오거돈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최근 스스로 불행한 선택을 한 박원순 시장도 성추행으로 피소당해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SNS에서 많은 이들이 추모글을 통해 박시장 죽음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말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한다. 여권에서는 성추문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느니 ‘부관참시’니 몰아붙이며 의혹을 원천봉쇄하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인간에 대한 예의인가? 인권변호사, 시민운동의 대부였던 유력한 정치인 박원순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 예의가 아니고, 수년간의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려 했던 한 힘없는 여성의 인권은 무시당하고 비난받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인가? 인간에 대한 예의는 불거진 문제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바로잡으려는 이들이 아니라, 고인의 죽음 앞에서 킬킬대고 조롱하는 극우 유튜버들, 이 틈을 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저울질하는 일부 정치인에게 요구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불평등한 남성 중심적 사회체제와 성문화 속에서, 젠틸레스키는 성범죄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육체적 고문과 부인과 검사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한편 가해자인 타시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에 편승하여 젠틸레스키가 헤프고 문란한 여자라고 주장하며 판결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 했다. 당시 여론 역시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에 성폭행은 없었으며 젠틸레스키의 동의하에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견해로 흘러갔다. 우여곡절 끝에 타시의 유죄가 인정되었으나 그는 형을 살지도 않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반면, 젠틸레스키는 도시 전체에 소문이 난 성 스캔들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쫓기듯 로마를 떠나야 했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는 어떤가. 안희정 지사, 박원순 시장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남성 가해자에 대한 너무나 관대한 성의식, 전통적인 성문화에 젖어 있다. 피해 여성의 도움 요청에 대한 서울시 내부 행정 라인의 대응 태도, 피해자에게 유능한 남성 정치인을 몰락시킨 ‘몹쓸 여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난하는 이들, 페이스북에 피해 여성을 조롱하는 듯 박시장과 팔장 낀 사진을 올린 현직 여검사의 행태는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17세기 젠틸레스키 시대의 여성을 보는 시각, 여성의 인권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21세기에도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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