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확실히 잡는 법

입력
2020.07.15 18:00
26면
몰락한 러스트벨트의 폭락한 집값
떨어뜨리려는 것보다 안정이 중요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 변화도 필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나는 이 정부가 그토록 달성하려는 집값 잡는 법을 안다. 집값이 확실하게 잡힌 곳을 가봤기 때문이다. 그곳은 미국 위스콘신주의 케노샤(Kenosha)였다.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를 취재하려고 2016년 12월 6일 찾은 그 도시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우리가 구한말 혼란에 허덕이던 1902년 이미 자동차를 쏟아냈던 33번가 5555번지의 43㏊(13만평) 대지는 폐허였다. 2010년 크라이슬러 공장 폐쇄 이후 콘크리트 잔해만 방치되어 있었다. 1,600명이 일하던 공장이 문닫으면서 주변 상권과 주택가는 쑥대밭이 됐다. 대낮인데도 인적 끊긴 주택가는 슬럼가를 방불케 했고, 상가 대부분은 폐업 간판을 내밀고 있었다. 그랬다. 일자리 없애고 경제를 망치면 저절로 잡히는 게 집값이었다.

케노샤의 황량한 거리는 이 정부 부동산 정책이 목표와 수단 모두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우선 집값은 잡고 낮춰야 할 대상이 아니다. 꾸준히 조금씩 오르도록 관리하는 게 정상이다. 대다수 많은 이들에게 집은 유일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집값 오를 때보다 더 큰 난리가 날 것이다. 은퇴자들의 노후는 흔들리고 금융기관은 도산할 수도 있다.

집값 오르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집값은 거시경제를 얼마나 잘 운영하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주가 상승이 경제 치적의 상징이듯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전반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건 경제력 향상의 필연적 결과다. 반경 1,000㎞ 이내(서울 기준) 10억명의 소비 시장을 갖고 있으면서 세계 최고수준의 공항, 항만, 고속철도와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나라가 한국이다. 정부 주장대로 코로나 위기에도 경쟁국 대비 선방하고 있다면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풀린 상황에서 왜 집값이 빠져야 하나.



집값은 물가에 맞춰 오르면 된다. 긴 안목으로 보면 서울 아파트만 유난히 폭등한 것도 아니다. 2009년 1162포인트였던 코스피지수는 2017년 10월 2501포인트였고, 15일에는 2,200선을 넘나들었다. 서울 아파트지수(한국감정원 공동주택실거래가격지수)는 66.3(2009년)에서 98.7(2017년)을 거쳐 요즘은 134 내외다. 2009~2017년 기간에는 코스피 상승률이 더 높았고, 2009~2020년 전 기간에도 아파트가 더 올랐지만 코스피 상승률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강남아파트만 유난히 올랐다’고 하겠지만, 개별종목 중에는 그 보다 폭등한 게 즐비하다.

집값을 잡겠다는 방법도 틀렸다. 정공법을 써야 한다. 세금폭탄 대신 금리를 올려야 한다. 건설업자가 돈먼저 받고 집을 짓는 ‘선분양’ 대신 ‘후분양’으로 바꿔야 한다. 부동산 약자를 위해서는 재정투입도 제대로 써야 한다. 서울 비강남지역의 인프라를 늘리고, 대기업과 좋은 학교를 유인하면 강남과의 격차는 머잖아 사라질 것이다. 강남 아파트를 강제로 팔게 할 추진력이라면 비강남지역 곳곳에 공무원 마을 조성하지 못할 것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투자관도 폭넓게 바뀔 필요가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불로소득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대통령의 신념이다. 재화의 장소와 시기만 바꿔도 부가가치가 만들어지는 ‘상업의 논리’를 천시했던 봉건적 투자관과 흡사하다. 그런 논리라면 63조원을 해외 부동산에 투자 중인 국민연금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은 신념을 보고 지도자를 선택했지만, 지도자는 현실과 국익의 관점에서 때로는 신념도 고쳐야 한다. 그래야 좋은 정책이 나온다. 문재인 비서실장이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대표 사례다.

조철환 신문국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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