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자식·신변 문제...차례로 허탈감 안긴 '개혁의 아이콘들'

입력
2020.07.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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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갑작스러운 사망에  당혹·허탈감
"개혁 말하던 이들이 인권·공정 스스로 훼손" 비판
일각선 "개인 문제... 진영의 결함으론 못 봐" 반론


시민운동 대부로 정치개혁운동을 이끌다 스스로 '개혁 정치인'으로 성공적 변신을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시민사회단체는 당혹감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6개월 새 사법개혁 주창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녀 의혹으로 기소되고,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이끌던 윤미향 의원이 기부금 유용 문제로 수사를 받은 데 이어, 박 시장마저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자, 진보와 개혁의 '아이콘'들이 잇달아 국민에게 안겨 준 실망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유력한 시민운동가 겸 인권변호사 출신 박 서울시장이 9일 세상을 떠나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상당수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박 시장을 상대로 성추행 의혹 고소가 접수됐다는 점을 문제 삼아, 박 시장 스스로 생전에 주창하던 인권보호와 양성평등 등 개혁 가치를 훼손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길지 않은 한국 시민운동 역사에서 박 시장은 빼놓을 수 없는 개혁의 상징이었다. 박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까지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설립하며 시민운동 상징으로 활동했다. 부패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낙천ㆍ낙선운동을 주도하며 활발한 정치개혁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인권변호사로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성폭력 사건을 맡으면서 여성 인권 향상에도 기여했다.

그렇기에 시민사회단체는 성추행 의혹 고소에 이은 박 시장의 사망에 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0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박 시장 빈소를 방문한 시민단체 관계자 A씨는 “박 시장이 민선 최초의 3선 서울시장으로 거둔 업적은 분명히 있지만,  성추행 의혹이 공소권 없음으로 끝난다는 불투명함 때문에 박 시장에 대한 답답한 마음만 커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조 전 장관과 윤 의원 의혹에 이어 개혁의 상징이 잇달아 각종 의혹에 휘말리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개혁을 부르짖던 이들이 스스로 말하던 가치를 저버렸다는 뼈아픈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기성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던 그들이 되레 가족ㆍ금전ㆍ신변 문제에서 철저하지 못해 자기 진영과 국민 전체에 실망감만 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조 전 장관은 사법개혁을 외쳤지만 자녀의 표창장 위조ㆍ사모펀드 등 자신의 말과 상반된 의혹에 연루됐다”며 “윤 의원 역시 위안부 피해자 인권을 위해 활동했지만 통제받지 않는 지위를 남용해 회계를 부정하게 처리한 의혹을 샀다”고 지적했다.

진보와 개혁의 상징들이 보수와의 차별성을 주장하기 위해 무리하게 도덕성과 공정성을 외치다가 부메랑을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김주형(30)씨는 “ “한국 진보세력은 도덕성을 자신들의 가치로 정립했지만, 그 힘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상실감도 적지 않다. 취업준비생인 이우신(29)씨는 “일련의 조국ㆍ윤미향 사건을 보면서 이들이 주장한 공정의 가치가 말 뿐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도덕성을 진보개혁 진영의 가치로만 볼 수 없고, 일부 인사의 개인적 사안을 진영 전체의 문제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조국ㆍ윤미향ㆍ박원순 사건을 보면 한국 시민운동은 여전히 과도기에 놓여 있는 것 같다”면서 “시대를 바꾸는 과정에 큰 고통이 뒤따르는데 그 동안 시민단체로 대변되는 가치가 바뀌어야 새로운 질서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이념과 별개로 권력 차원에서의 자기 점검과 긴장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일련의 사태는 진보세력이 권력에 오르면서 긴장이 이완되며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념을 떠나 권력가들의 긴장과 자기검열 결여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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