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현대사기행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여순사건’ 답사를 다녀왔다. 이 사건은 1948년 여수 14연대의 좌파들이 제주의 4ㆍ3 사건을 진압하러 출동하라는 명령에 봉기를 일으켜 여수, 순천을 점령한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자, 진압군이 주민들을 협력자라며 대량 학살한 비극이다. 이제 정부 조사에서 진상이 밝혀져 상당 부분 명예회복이 됐고 추모물들도 생겼다. 한데 일부에서 이를 ‘여순항쟁’이라고 주장해, 논쟁이 되고 있다. 만일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는 명령을 군이 거부했다면 이를 정당한 항쟁으로 봐야 하듯이, 제주 양민들에게 총을 겨누라는 명령에 봉기한 것이니 정당한 항쟁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군에서 ‘정당한 명령 불복종’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한다. 이처럼 군도 정당한 명령 불복종을 논쟁하고 있는데, 요즈음 국회를 보면, 민의를 대표하는 헌법기관이 아니라 상명하복의 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 군대화’라고나 할까? 우선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한 징계다. 금 전 의원은 정부여당이 추진한 공수처법에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표적공천심사 끝에 낙선했다. 한데 더불어민주당은 그를 다시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계했다.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역시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이 예산이 학교 방역예산과 취약계층학생 지원예산을 감액하는 등 코로나사태에 대비한 교육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성 지지자들이 다수인 당원들이 격렬하게 반발했고 강 의원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물론 당은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당론은 중요하다. 특히 당원들의 지지에 의해 당선된 비례대표의 경우 당론과 당원들의 입장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은 더 구체적이다. “의원은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당론보다 양심이 중요하다. 따라서 양심에 따라 투표한 금태섭과 강 의원을 징계하고 비판하는 것은, 헌법과 국회법을 어긴 위헌적인 범법 행위이다. 일반 당원들은 그렇다고 치자. 공당, 그것도 민주화 운동의 전통을 자랑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이 같은 위헌적 범법 행위를 하다니 한심한 일이다. 우리의 정당정치를 군사독재시대로 후퇴시키고, 국회를 상명하복의 군대로 만드는 짓이다.
안철수 국민의당대표가 정치에 나서며 내놓은 주요 공약이 국회의원 수 축소였다. 그는 국회의원을 100명 줄이면 2,000억-4,000억원이 절약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시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의원 수는 국제기준에서 오히려 적으며, 예산이 문제라면 “아예 국회를 없애고 국회 대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씨가 여론조사 지지율로 의석수에 해당되는 투표권을 가지고 국정을 결정하면 예산을 대폭 절약하고 얼마나 경제적인가요”라고 비판했다. 요즘 똑같은 생각을 다시 한다. 금 전 의원, 강 의원처럼 소신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하고 공개 사과를 하게 만들 바에는, 국회의원을 단순히 당론을 따르는 거수기로 만들고 국회를 상명하복의 군대로 만들 바에는, 왜 국회를 운영하는가? 그냥 당대표들이 정당투표나 여론조사의 당지지율만큼의 투표권을 가지고 이들끼리 만나 국정을 운영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국회를 없앨 경우 어려운 경제에 300명과 수많은 보좌관이 실업자가 될 것이니, 세비와 월급은 그대로 줘도 상관없다. 국회의 군대화, 이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