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간 병원 화재 30여명 사상... 순식간에 '아수라장'

입력
2020.07.10 10:45
경찰ㆍ소방당국 현장 감식


10일 새벽시간대 화마가 덮친 전남 고흥군 윤호21병원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곤히 잠든 취약시간이었던 까닭에 건물 1층에서 일어난 화재였음에도 노인 환자 2명이 참변을 당했다.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전남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42분쯤 고흥군 고흥읍에 위치한 윤호21병원에서 불이 나 입원환자인 70대 여성 2명이 숨지고 28명이 부상을 입었다. 구조된 환자와 가족 등 50여명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불이 난 당시 병원에는 입원환자 69명과 간호사 7명, 간병인과 직원 10명 등 모두 86명이 있었다.

화재 당시 대부분이 잠든 새벽시간인데다 연기가 급속히 퍼지면서 병원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사망자는 밖으로 탈출하다 연기에 질식돼 숨진 것으로 보인다. 환자와 가족 일부는 연기가 가득한 어둠 속에서 탈출구를 찾다가 깨진 유리조각에 밟히거나 피투성이가 된 채 옥상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옥상으로 대피한 환자들은 살려달라며 소리쳤고, 간호사는 환자들을 둘러업고 불 꺼진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일부는 구조대가 자신들을 쉽게 발견하도록 손전등 빛을 흔들며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쳤다. 소방사다리차와 이삿짐 차를 타고 내려온 환자들은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병원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환자들은 병원 옆 택시회사 차고지에 마련된 간이 응급진료소에서 비를 피했다. 그을음과 피가 묻은 환자복 차림의 부상자가 바닥에 줄지어 쓰러진 택시회사 주차장은 처참했다. 119구급대는 부상 정도에 따라 광주, 순천, 보성, 벌교 등 인근 병원으로 분산 이송했다.

1층에서 시작된 불은 지상 7층 건물 위로 번지며 피해가 많았지만 건물 내부에는 화재 진압 장치인 스프링클러가 한 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설립된 해당 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 등은 스프링클러 설치 외에 비상경보음과 안내방송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다.

불은 오전 3시42분쯤 병원 직원이 1층에서 연기와 함께 화염이 치솟는 것을 목격하고 신고하면서 인지됐다.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의 병원 건물 1층은 내과와 정형외과 진료실이 자리 잡고 있다. 신고자는 "1층 내과와 정형외과 사이에서 불이 난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화재 당시 1층에는 병원 직원 1명이 있었고 진료실, 촬영실, 주사ㆍ채혈실, 원무과 등 외래 관련 시설에는 근무자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새벽시간 비어있던 진료실 부근에서 불이 시작됐고 화재 직후 전기가 끊긴 점을 토대로 '전기적 요인'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구체적인 화재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화재 감식을 통해 방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할 방침이다.

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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