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기억 없고 야단친 기억만"...화성 실종 초등생 아버지 깊은 한숨

입력
2020.07.07 15:54
이춘재 연쇄살인 10번째 희생자 화성초등생 기일
김용복씨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며 깊은 한숨

“딸에 대한 좋은 기억은 온데간데 없고, 야단 친 기억밖에 없어 한탄스럽습니다.”

7일 오전 11시 경기 화성시 한 근린공원. 백발의 김용복(69)씨는 하얀 국화꽃을 공원 나무 한 켠에 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이춘재가 연쇄살인 중 10번째로 살해했다고 자백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의 아버지다.   

김씨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1989년 7월 7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와야 할 딸(당시 8세)이 실종된 지  정확히 31년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공원은 김씨의 딸이 실종 당시 입었던 치마와 책가방 등 유류품이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김씨는 “딸의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다”면서도 “민방위 훈련을 가려는데 자꾸만 따라가겠다고 나오던 딸에게 ‘따라오면 안 된다’고 야단친 기억만 난다”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30년 동안 (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는 게 너무나도 원통하다”며 “애 엄마는 아직도 딸이 죽은 게 아니라 실종됐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내가 당시 7월 7일 실종신고한 날이라 ‘오늘이 기일이다’ 생각하고 왔다”며 “딸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힘들게만 한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좋은 곳에서 편하게 잘 지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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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딸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잠시나마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딸의 시신과 유품 등을 찾고도 이를 숨긴 경찰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딸 시신을 발견하고도, 주민들이 신고까지 했다는데 왜 말을 안해 줬느냐”며 “내가 죽기 전에 (숨긴 경찰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지금이라도 당시 수사관들을 만나 이유라도 물어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왜 당시 사실을 감춰 뼈 한 줌도 못 찾게 했느냐, 이춘재 보다 이를 숨긴 경찰이 더 나쁘다”며 “지금의 경찰이 왜 잘못했다고 인사를 하느냐 그들(당시 경찰)이 직접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2일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을 이춘재의 연쇄살인사건 14건 중 10번째 사건으로 분류했다. 그러면서 당시 시신의 유골을 발견하고도 이를 숨긴 혐의(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로 당시 형사계장 등 경찰 2명을 입건했다. 다만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헌화에 동참한 김씨 측의 법률대리인 이정도 변호사는 “경찰이 해당 수사관들에게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했으나, 공소시효가 만료돼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상황”라면서도 “현재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판례를 살펴봤을 때 퇴직하는 순간까지 사체은닉 등을 수습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퇴직한 날로부터 공소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며 “검찰 쪽에서 이들에게 적용할 공소시효 범위를 좀 더 유연하게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헌화에는 나원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과장이 당시 경찰관들을 대신해 경기남부경찰청장 명의의 국화가 담긴 바구니로 조의를 표했다. 이정현 중요사건미제수사팀장과 피해자보호전담 직원 등 4명도 동참했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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