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저승사자’가 국회 인사청문을 받는 후보자석에 앉는다.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얘기다.
박 후보자는 야당 의원 시절 '인사청문회 저격수'로 불렸다. 이명박 정부 때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등이 낙마하는 과정에서 박 후보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청문회 정국마다 날카로운 정보력으로 국무위원 후보자의 도덕성을 허물었다.
그런 박 후보자가 이번엔 인사청문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그를 잔뜩 벼르고 있다. 공수 교대의 진풍경이다.
박 후보자에게 ‘청문회 저승사자’의 별명을 안긴 건 2009년 7월 열린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다. 야당인 통합민주당 소속이었던 박 후보자는 △사업가와의 동반 해외 골프여행 △부인의 해외 사치품 쇼핑 △아들의 초호화 결혼식 △위장 전입 등 대형 의혹을 제기해 천 후보자와 이명박 정부를 흔들었다. 천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하루 만에 자진 사퇴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ㆍ관세청 등의 내부 정보를 입수해 천 후보자에 치명상을 안겼다. 천 후보자 후임으로 지명된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법무부가 박 후보자에게 “살살 좀 해달라”는 읍소 전화를 하기도 했다.
2010년 8월 거짓 해명으로 하차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골프 회동 논란도 박 후보자가 입수한 제보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박 후보자는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3일 “애국심을 갖고 충성을 다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공식 활동을 중단한 채 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다. 박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1999~2000년)을 지냈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법 도입 이전이라 인사청문회를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 6월 인사청문제도 도입 이후 국회의원 출신 고위 공직자 후보자가 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사례는 없다. 의원들끼리는 검증 예봉을 무디게 하는 관행 때문이다. 통합당이 그런 관행을 이어갈지가 박 후보자의 운명을 상당 부분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올해 3월 공개한 정기재산변동신고 내역에 따르면, 박 전 의원의 재산은 약 15억 5,000만원이다. 서울 영등포구 아파트(11억원) 한 채, 본인 소유 예금, 한 유명 호텔 헬스클럽의 회원권(1,000만원) 등을 신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000년 6ㆍ15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었던 박 후보자는 노무현정부에서 불법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받았다. 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받았으나, 대기업 자금 1억원 수수 혐의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받았다. 2007년 특별사면돼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