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코로나 팬데믹 시대…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하다

입력
2020.07.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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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인공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짜증을 웃음으로 견뎌 내기란, 정말이지 강한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 같아요.”

우리는 매일 말을 한다. 일상생활 속의 사소한 짜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언어적ㆍ비언어적 의미를 갖는 행동을 습득함으로써 의사 소통 능력을 발전시킨다. 정신과적 면담에서는 때로 언어적 표현보다 몸짓이나 자세, 얼굴표정, 목소리의 톤과 눈맞춤 같은 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흔히 스마트폰으로 문자 대화를 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문자 내용과 상관 없이 무표정하게 보인다. 하지만 말을 할 때는 다르다. 말의 내용과 얼굴 표정이 대개는 일치하게 되는데 이것이 심하게 다른 경우는 감정의 부조화(不調和)라는 정신병리적 현상에 해당될 수 있다.

사람들마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과 사회적 기술은 차이가 난다. 정신과학자 노먼 캐머런은 편집성 허위사회(paranoid pseudo-community)라는 표현을 통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의사소통 능력이 저하된 경우를 설명하였다. 그들은 자존심을 떨어뜨리는 상황, 질투심이나 의심을 늘리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숨겨진 의미나 동기를 추정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와 달리 사회를 유독 자신만 비난하고 비하하는 가상의 편집성 허위사회로 인식한다.

편집성 허위사회는 현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 하는 경우 망상(delusion)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망상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 문화적 배경과 맞지 않는, 잘못된 믿음으로 정의된다. 다른 사람이 악의적으로 본인을 속이고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이 가장 흔하다.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 치매 등 다양한 정신질환에서 나타난다.

망상은 그것이 잘못되어 있음을 본인에게 설명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또 신경생리적으로 견고해진 믿음은 쉽게 바꿀 수 없다. 근본 질환을 제대로 치료해야만 서서히 좋아지는 증상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이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드와 초자아는 무의식적 욕구를 가진다. 이 욕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자아는 심리적으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사용한다. 방어기제는 개인의 성장과 함께 진화한다. 청소년기 추상적 사고가 가능한 이후에는 이타주의나 유머 같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발휘하게 된다.

투사(projection)는 본인 내면의 무의식적 내용들을 외부의 대상에게 돌리는 방어기제다. 문제가 있을 때 본인 탓을 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는 게 훨씬 쉽다. 아이가 넘어지면 어머니가 땅바닥을 때려주는 것과 같다. 어린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원초적이며 미성숙한 방어기제다. 망상은 투사의 방어기제와 관련돼 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은 종종 투사의 대상이 된다. 좋은 내용보다는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의심, 두려움, 공격심, 자기 비하, 질투심 같은 부정적 내용이 더 쉽게 투사되고 증폭된다. 온라인 상에 넘쳐 나는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악성 댓글은 대부분 투사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언어는 인간을 규정하는 요소이며 사회문화를 이루는 근간이다. 영국의 정신과학자 크로는 조현병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조현병이 침팬지에서 인류가 종으로 분화되기 전인 500만년 전에 생긴 질환이라는 가설을 발표하였다.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시작된 뇌의 신경망이 효율적으로 조직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진행된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설명이다.

지금 우리는 근래 전례 없는 전염병의 대유행 상황에서 서로 칭찬해 주기에 충분할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요즘 말과 언어의 의미와 전달은 더 중요해졌다.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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