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 뜨겁다. 국립묘지 안장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정작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다름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국립묘지의 정치적 상징 기능 때문이다.
공동체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까. 바로 공동체의 기억과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특히 죽은 자를 안장(安葬)하고 이를 기리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의 과거를 복원해서 현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시 미래의 가치를 정립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인류의 유구한 매장 문화를 비롯하여, 장례 의식, 차례(茶禮)와 같은 제사 문화가 규범으로 정립되는 과정이 그러하지 않은가. 같은 맥락에서 국립묘지를 유지・존속시키고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ㆍ공헌한 사람을 사후에 안장하는 것이야말로 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행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은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ㆍ공헌한 사람이 사망한 후 그를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ㆍ19민주묘지 및 국립3ㆍ15민주묘지, 국립5ㆍ18민주묘지, 국립호국원, 국립신암선열공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국립묘지에 안장될까.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기여한 희생ㆍ공헌과 과오의 비난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별하게 된다. 즉, '국립묘지법' 제5조에 따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가 그 대상이 되지만(제1항 내지 제3항), 반국가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사유를 통해 안장을 배제하는 것이다(제5항). 이 때문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거나, 복무 중 전사 또는 순직 외의 사유로 사망한 사람,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 내란죄나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처럼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거나 비난가능성이 큰 죄를 지은 자, 그리고 심의를 통해 국립묘지의 영예성(榮譽性)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은 안장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대통령ㆍ국회의장ㆍ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의 직에 있었던 사람일지라도 그가 탄핵 등의 사유로 직에서 파면되었다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내란죄의 수괴이자, 내란목적살인,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초병살해, 특가법위반의 뇌물죄를 저질러서 무기징역 등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자가 있다면, 당연히 그 자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란 내지 반란의 중요 임무에 종사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자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설사, 사면(赦免)등을 받았더라도, 형의 선고가 있었다는 기왕의 사실 자체에 대한 효과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므로 달리 안장에 있어서 고려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 이런 자들이 아무렇게나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버리면 국립묘지의 영예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고, 이들이 묻혀 있는 곳은 국립묘지가 아니라 그저 공동묘지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예성이 무엇일까라는 질문도 제기될 법하다.
‘영광스러운 명예’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는 딱히 영예성을 규정하는 문언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영예성’ 내지 ‘영예성의 훼손’ 관련해서 우리 헌법재판소가 “‘영예성’은 안장 대상자가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ㆍ공헌한 점뿐만 아니라, 그러한 희생ㆍ공헌의 점들이 그 전후에 행해진 국가나 사회에 대한 범죄 또는 비행들로 인하여 훼손되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 바 있다. 요컨대 국립묘지 안장의 기준으로서 영예성은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ㆍ공헌한 데 따른 명예이고, 만약 국가나 사회에 대한 범죄나 비행이 중하다면 영예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할 만큼 국가나 사회에 대한 중한 범죄나 비행은 무엇일까. '국립묘지법'에 따라 내란죄의 유죄판결 등이 안장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가 공동체의 존립과 유지를 훼손하는 행위도 이에 준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달리 이견이 없어 보인다. 만약 이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우리 헌법의 문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거나 저해했던 행위들,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하는 것을 방해했던 행위들이 영예성을 저해하는 안장의 결격사유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사후에 아무렇지 않게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면, 앞으로도 그러한 과거가 반복되어도 좋다는 신호가 될 수 밖에 없다. 국립묘지의 안장 대상자를 확정하고 선별하는 일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현재의 사실을 미래의 가치로 확립하는 부단한 과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