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은 생전에 단 한 권의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 1988)을 냈다. 사후에 동시집 '삼베치마'(문학동네, 2011), '나만 알래'(문학동네, 2012)가 나왔는데 전자는 1964년 그가 손수 책의 형태로 묶은 원고를 복간본처럼 그대로 출간한 시집이고, 후자는 이를 재편집한 시집이다.
최근 출간된 네 번째 동시집 '산비둘기'는 1972년 권정생이 당시 '기독교교육' 편집인이었던 오소운 목사에게 손수 만들어 선물한 원고였다.(권정생은 동화 '강아지똥'으로 1969년 '기독교교육'에서 공모한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산비둘기'에는 그가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이미지가 잘 살려져 있다.
따지자면 사후 출간된 세 권의 동시집은 생애 마지막에 집필한 ‘유고작’도 아니고, ‘발굴작’으로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도 어렵다. '삼베치마'와 '산비둘기'에서 돋보이는 작품 대부분은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에 이미 다 수록해 놓았기 때문에 습작 원고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세 권의 동시집은 문학적 가치에 앞서 권정생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그리움, 감사, 경외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민이는 이만치 크게/우리 예배당//준이는 더 더 크게/하나님 집//(중략)영이는 조그맣게/아기 예수의 집”('모래밭에' 중)이라고 말하는, 순하지만 대담한 목소리를 여기서도 발견하며 권정생 동화의 핵심 하나인 그리스도교 사상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를 하느님으로 바라보고 받드는 마음, 바로 그것이 오래도록 존경과 사랑을 받는 그의 어린이문학이 태어난 자리다. 최근 번역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 '우리가 작고 외롭지 않다면'에서도 비슷했다. 린드그렌 동화 '미오, 나의 미오'에서 어린이 주인공이 악의 기사 카토에 맞서며 기도처럼 외우던 구절, “우리가 작고 외롭지 않다면.” 위대한 어린이문학은 어른의 현실에서 너무 작은 존재로 살아가는 어린이를 향한 극진함에서 나온다고, 새삼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