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계산해주세요."
블루치즈 샐러드 드레싱, 버터, 칠면조, 개 사료, 치약…총 24.97달러(약 3만원)짜리 식료품을 산 로리 말렌브레이(63)씨는 계산원에게 화폐나 카드 대신 작은 나무 딱지를 건넸다. 인구 2,000명도 채 되지 않는, 미국 워싱턴주(州) 소도시 테니노의 지역화폐다.
"테니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인한 지역 내 경기 침체를 이겨 내기 위해 매달 300달러(약 36만원)짜리 지역 화폐를 주민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고 AP통신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당 화폐는 테니노에서만 사용 가능한 것으로, 주유소ㆍ자동차 수리소 등 대부분의 사업체에서 사용 가능하다. 다만 술ㆍ담배ㆍ마리화나 구매에는 사용할 수 없다.
이 지역화폐는 무상으로 주민들에게 제공돼, 기본소득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프로그램 초기에 지원을 신청한 말렌브레이는 통신에 "내가 일해왔던 회사는 실업급여를 주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현재 받는 월급이 평소와 똑같은 것도 아니다"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 화폐는 큰 도움이 된다"고 평했다. 테니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마리아 윌리엄스도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시(市)가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이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소상공인들은 이 화폐를 실제 달러로 상환할 수 있다. 또는 화폐를 따로 판매해 부업으로 삼을 수 있다. 일부 상인들은 동전 수집가들에게 액면가의 3배를 받고 팔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웨인 포니에 테니노시장은 "이곳은 여름철 관광에 많이 의존했던 지역"이라며 "지금 모든 것이 폐쇄된 탓에 우리끼리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그런데 테니노 지역화폐의 독특한 점은 카드나 현금 형태인 다른 지역화폐와 달리 오래된 나무딱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통신에 따르면 이 화폐는 얇게 깎인 단풍나무로 만들어졌다. 1890년대 지역 신문 제작에 이용된 방법이다. 색인카드의 두께ㆍ크기ㆍ유연도 모두 미국 대공황 시절 만들어진 화폐를 본떴다. 타일러 휘트워스 전 상공회의소 회장은 통신에 "나무딱지를 사용하는 이유는 직불카드나 현금은 그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재난형 기본소득'은 어떨까. 우선 대부분이 모바일형이나 카드형으로 지급된다. 서울시의 '서울사랑상품권', 인천시의 '인천e음 카드', 충청남도의 '천안사랑카드', 전라남도의 '광주상생카드' 모두 카드형 혹은 모바일형이다. 이에 테니노의 나무딱지 지역화폐 소식을 들은 한 누리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화폐에 비해 사람 냄새가 난다"고 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