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찾기

입력
2020.06.29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선주자 백종원' 파장이 길게 가고 있다. "백종원씨 같은 분이 어떠냐.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 의미가 '백종원 대통령 만들기'가 아님은 자명해 보인다. '백종원보다 임영웅이지'라는 농담이 번진다며 "김 위원장이 정치를 희화화했다"는 당내 비판은 그러니 무시해도 좋다. 주목할 것은 "백종원이 되겠다"(원희룡), "분발하라는 메시지"(오세훈)라는 반응이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능력ㆍ비전뿐 아니라 호감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잠룡들은 정확히 그에 화답했다.

□ 앨 고어가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54만표(0.5%포인트)를 더 얻고도 낙선한 것은 기이한 미국 선거제도 때문이지만 일부는 고어의 비호감 이미지를 탓했다. 그는 명석한 두뇌, 달변, 부통령으로서의 국정 경험 등 모든 면에서 경쟁자 조지 W 부시를 압도했으나 딱 하나가 뒤졌다. 소탈한 부시에 비해 '싸가지 없는 똑똑이'같다는 이미지가 그것이다. 반면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조순 후보는 어눌한 토론 실력에도 불구, 오히려 그 때문에 인간적이고 신뢰가 간다는 평을 얻어 지지율 1위였던 박찬종 후보를 꺾었다.

□ 선거에서 이미지 정치의 위력은, 인간의 이성을 의심케 할 만하다. 2005년 사이언스에 게재된 미 프린스턴대 연구팀의 실험을 보자.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살지 않는 주(洲)들의 하원의원 후보 얼굴사진을 보여준 뒤 누구를 뽑고 싶은지 선택하도록 했다. 이 '인상 투표'의 결과는 실제 당락 결과와 67%나 일치했다. 8~13세 아이들조차 70%가 실제 당선자를 골랐다. 공약이나 이슈는 유권자들이 이미 선택한 결정을 나중에 합리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일  뿐이라는 정치학자들의 시각이 일리가 없지 않다.

□ '백종원 같은' 이미지의 인물은 위협적인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 인지도ㆍ호감도는 무시 못할 정치적 자산이다. 문제는 국가 지도자로서 성공은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통합당엔 이미 전례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품격을 갖춘 비운의 공주 이미지로 선거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겉모습과는 괴리가 큰 부실한 콘텐츠, 뒤틀린 역사인식으로 국정에서 실패했다. 괴리가 큰 만큼 국민의 배신감도 컸고 탄핵으로 이어졌다. 다음 대선을 대비한 통합당의 백종원 찾기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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