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서양인, 누가 더 깔끔한가

입력
2020.06.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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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양문화권(독일, 영국, 브라질, 미국 등 거주)에 살면서 크게 놀란 점은, 서양인들의 위생 관념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이다. 우선 그들이 신발을 벗지 않고 집안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놀라움인데, 특히 청소를 마친 우리 집에 볼일을 보러 온 서양인이, 우리 애가 바닥에 기어다니고 있는데, 신발을 신은 채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닐 때는 정말 뒤통수라도 한 대 힘껏 때려주고 싶었다. 그런 일을 겪은 후부터 꼭 신발을 벗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 부탁이 그리 마음 편하지 않다. 

 이러한 신발문화의 차이는 영역 구분의 차이점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더럽고 깨끗한 영역의 구분이 명확한 반면, 서양인들에게는 그 구분이 불분명해 보인다. 이 영역의 구분은 수평적, 수직적으로 모두 적용된다. 수평적으로 우리는 외부와 내부, 그리고 내부에서도 현관, 거실, 베란다, 화장실 등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여, 신발을 벗든지 또는 그 영역의 용도에 맞게 다른 신으로 갈아 신는다. 반면 서양인들의 집에는 ‘현관’(신발을 벗는 영역으로 바닥의 높낮이로 실내 주거공간과 구분됨)이 없어서 실내 아무데나 신발을 벗어 놓든지, 혹은 신발을 신은 상태로 소파에 앉거나 심지어 침대 속으로도 들어간다. 

 우리의 영역 구분은 수직적으로도 작용하여, 대체로 위는 깨끗하고 아래는 더럽다고 인식하는 반면, 서양인들에게는 이런 구분조차 명확하지 않다. 우리는 그릇에서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절대로 주워 먹지 않고, 그곳이 집이 아닌 다른 곳이면 식탁에 떨어져도 대체로 주워 먹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집 바닥이 바깥 신발을 신어서는 안 될 깨끗한 곳이지만,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을 정도의 깨끗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 먹거나, 비둘기 분비물이 있는 야외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빵 조각들을 주워 먹으며 식사를 하곤 한다. 또 애완견 분비물이 많은 잔디, 더러운 기차나 전철 바닥에 그냥 주저앉거나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두기도 한다.

 우리가 공간을 나눠가며 깨끗함을 추구하는 태도는 전통적으로 방바닥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는 좌식생활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온돌이라는 방바닥 난방 시스템으로 따끈한 아랫목에서 밥공기까지 덥히던 우리들에게 바깥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 실내로 들어오는 것은 위생 제1 원칙의 위배인 것이다. 반면, 의자나 침대 등을 사용하는 입식 생활을 해오고, 난방으로 벽난로를 떼는 서양인들에게 방바닥은 그다지 ‘신성’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한국과 서양의 차이는 더 나아가서 농경민과 유목민의 차이로까지 확대해 볼 수 있겠다. 일찍부터 농경생활을 해오던 우리는 오랜 정착생활로 집 안팎과 위아래의 영역 구분을 까다롭게 하며 위생에 신경을 쓴 반면, 유목민 생활을 하던 서양인들은 이동 중 임시 거처에서 영역 구분이나 위생에 그다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서양인들은 청소용 화학약품들에 의존하고, 그 종류도 엄청 세분화되어 있는데, 대체로 물청소와 물걸레질로 만족하는 우리의 위생관념을 못 미더워한다. 과연 방바닥을 물걸레로 깨끗이 닦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더러움을 차단하는 것이 더 위생적인 것인지, 아니면 집 안팎이나 위아래 영역 구분은 덜 신경 쓰고 약품으로 세균들과 싸우는 것이 더 위생적인 것인지 점점 모호해진다. 평상시에는 한국인과 서양인의 건강과 수명에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요즘 같은 코로나 사태를 겪다보니, 작은 위생의 차이(손 씻기 등)가 큰 결과를 초래한다고 느껴 또다시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김윤정 ‘국경을 초월하는 수다’ 저자ㆍ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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