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사업가 간첩 사건' 피해자들 43년만에 무죄

입력
2020.06.28 18:57
판결 확정되면 피해자 11명 전원 누명 벗어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 사건'의 피해자 4명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앞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7명을 포함해 피해자 11명이 모두 누명을 벗게 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원익선)는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고(故) 김기오·고재원·고원용·김문규씨 등 4명의 재심에서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죄의 증거가 된 피의자 신문조서와 각 진술서는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강제 연행된 다음, 불법 구금된 상태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는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하거나 이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 사건은 고(故) 강우규씨가 1977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에 시달리다 북한공작원의 지령을 받았다고 허위 자백한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강씨 이외에도 공범으로 지목된 10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전기고문, 물고문, 매질 등을 가했고 이들은 강씨에게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고 거짓 진술했다.

강씨 등은 이후 재판에서 허위 자백임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강씨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이듬해인 1978년 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기오씨는 징역 12년, 고재원씨 징역 7년, 고원용·김문규씨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강씨는 11년간 옥살이 끝에 198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2007년 일본에서 숨졌다. 김문규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1982년 극단적 선택을 했고, 김추백씨는 1979년 교도소에서 쓰러져 형집행정지로 출소했으나 며칠 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 "이 사건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 때문에 거짓자백을 했다"고 결정 내리면서 재심의 길이 열렸다. 앞선 재심에서 서울고법은 "강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사실 등이 인정되지 않고, 그에 따라 다른 피고인들도 강씨를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로부터 지령을 받은 자라고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씨 등 6명에 무죄를 선고해 2016년 6월 확정됐다. 공범으로 몰린 고(故) 장봉일씨도 같은 이유로 2018년 10월 무죄가 확정됐다. 이번 판결까지 확정되면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 사건의 피해자 11명 전원이 누명을 벗게 된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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