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지상배치형 탄도미사일 요격시스템인 ‘이지스 어쇼어’ 배치 계획 중단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전수방위 위배 논란이 거센 ‘적 기지 공격능력’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일 태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민감한 안보이슈로 잇단 정치적 악재를 물타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장관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전날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야마구치현과 아키타현에 이지스 어쇼어를 배치하는 계획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를 대신할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포함한 미사일방어(MD)체제를 논의해 연말에 확정될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방침인 국가안전보장전략 등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지스 어쇼어 도입은 2017년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기 구매 요구에 따라 아베 총리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사안이다. 더욱이 미국과의 구매계약 이후 현재까지 196억엔(약 2,209억원)을 쏟아 부은 만큼 아베 총리가 이를 뒤집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응과 차기 검찰총장의 ‘내기 마작’ 스캔들, 측근인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전 법무장관 부부 구속 등으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하는 시점에 나온 결정이기 때문이다.
산케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지난 4일 고노 장관이 배치 중단을 건의했을 때만 해도 미일동맹을 의식해 고개를 저었지만 12일에는 고노 장관을 만나 건의를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한 자민당 간부는 "아베 총리가 배치 중단을 수용하는 대신 자신의 지론인 적 기지 공격능력 논의를 시작하려는 생각을 고노 장관과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향상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지스 어쇼어 배치가 중단될 경우 보수층을 중심으로 '안보 공백'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를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주간지 '슈칸뷴슌'도 이날 총리관저 관계자를 인용해 "적 기지 공격능력을 하나의 쟁점으로 해서 10월 중의원 해산 방안도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이지스 어쇼어 배치 중단을 강력 건의했던 고노 장관에 대해서는 차기 총리 도전을 염두에 두고 승부수를 걸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이달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그를 '포스트 아베'로 꼽은 응답자는 9.2%로 지난달(4.4%)보다 두 배 이상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