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최근 대학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학기 내내 온라인 비대면 강의를 실시해 온 대학들이 기말고사를 대면 시험으로 치르면서 혼란을 빚고 있기 때문인데요.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면 시험 시행 결정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n차 감염이 확산세를 보이면서 감염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400여개 대학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는 무리해서라도 대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학생들과 대면 시험을 치러서는 안 된다는 학생들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학들이 감염에 대한 걱정을 무릅쓰고 기말고사를 대면 시험으로 치르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중간고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여럿 적발됐기 때문인데요. 온라인 비대면 시험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많은 대학이 상당수 강의의 기말고사를 대면 시험으로 치르게 됐습니다.
기말고사를 대면 시험으로 치르면서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학교를 찾고 있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을 보러 가듯 많은 학생들이 버스와 기차에 몸을 싣고 ‘2020년판 과거 시험장’이 된 학교를 향하고 있는데요.
마지막 학기를 수강하고 있는 기자도 대면 시험을 치르게 돼 24일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찾았습니다.
아침에 경기 수원 집을 나서자마자 학교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대면 시험이 시작된 22일부터 학교 측은 매일 오전마다 사전 자가진단 링크를 담은 공지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요. 사전에 자가진단을 통해 몸에 이상이 있는 학생이 학교를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제적 대처입니다. 간단히 문진을 마친 후 조치원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조치원 역에서 내리자 부슬부슬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해 택시를 타고 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시험장이 있는 학과 건물에 다가서자 TV에서나 보던 낯선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평소 자유롭게 오가던 학과 건물의 출입구는 한 곳을 빼고 모두 폐쇄됐습니다.
출입구에서는 근로장학생이 열화상 카메라와 함께 출입자들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체온을 확인한 뒤 출입자 명부에 이름과 핸드폰 번호, 소속 대학 등을 적고, 학생증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문진 확인 스티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출입국 수속처럼 까다로운 절차였는데요. 최근 전국적으로 n차 감염이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방역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사히 시험장이 있는 학과 건물에 들어서자 건물 곳곳에 손 소독제와 클리닝 티슈가 비치돼 있었습니다. 복도에는 수용 허용 인원이 적힌 종이가 강의실 입구마다 붙어있었는데요. 안으로 들어서니 책상에는 학생들 사이에 비말이 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 설치된 칸막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시험 시간이 다가오자 학생들이 하나 둘 강의실을 채웠습니다. 뒤이어 교수가 등장했는데요. 마스크를 쓰고 조교와 함께 들어온 교수는 “시험 때문에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기자는 해당 교수의 강의를 몇 번 수강해 교수와 안면이 있었는데요. 마스크를 쓴 탓에 교수가 기자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교수는 기자가 이름을 말하고 나서야 반갑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윽고 시험이 시작했습니다. 좌석마다 칸막이가 설치돼 있긴 했지만 마스크 착용은 교수와 조교에 의해 엄격히 통제됐는데요. 조교는 학생들이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하면서도 마스크는 절대 벗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은 약 1시간 동안 마스크를 착용한 채 칸막이로 둘러싸인 책상에서, 교수와 조교의 삼엄한 경계 속에 시험을 치렀습니다.
시험을 보는 동안 기자는 굉장히 답답했어요. 시험 한두 시간을 보는 대학생도 이렇게 답답한데,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몇 시간 동안 수업을 듣고 있을 초중고 학생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대학생들은 시험이 끝나면 ‘시험 뒤풀이’를 하곤 합니다. 평소 기자도 시험이 끝나면 동기나 선후배들과 함께 밥을 먹고 PC방이나 코인 노래방을 찾아가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요.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시험을 마친 학생들은 혹시 모를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뒤풀이 없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코로나19 탓에 다소 삭막해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기자는 24일 하루에 2개의 시험을 치는 것으로 기말 시험이 모두 끝났는데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았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보통 17학점 안팎의 학점을 이수하고 있어 평균 5,6개의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에 모든 시험을 치는 게 아니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선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는데요. 바로 시험 보는 동안 어디에 머무는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서울 목동에 사는 김모(20·고려대2년)씨는 기말고사 시즌을 앞두고 큰 배낭을 매고 조치원을 찾았는데요. 김 씨는 “집에서 학교 오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대면 시험이 계속 잡혀 있어서 집을 나왔다”며 “일주일 가까이 묵을 곳이 필요해 배낭에 짐을 싸서 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 묵을 곳이 없어 과 동기 방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는 김씨는 원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비대면 수업 때문에 자취방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말고사가 예상과 달리 대면 시험으로 치러지게 됐고, 시험 기간 동안 묵을 곳이 필요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동기 방에서 얹혀 살게 된 겁니다.
동기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김 씨는 “많은 학생들이 시험기간 중에 지낼 곳이 없어 나처럼 난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부산이나 광주처럼 먼 곳에서 오는 학생들은 대면 시험으로 인해 교통비와 숙박비 등으로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30~40만원을 쓰고 있다더라”라고 덧붙였습니다.
대학생들의 기말고사는 길게는 2주 동안 치러지는데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 기간 동안 매일 통학을 하기에도 시간적·금전적 부담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학교 측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는데요. 때문에 학생들이 그 부담을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이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등록금을 내고도 이렇다 할 보상책이 없었는데, 시험 기간에 추가적으로 지출이 생기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며칠 전 심한 두통으로 인해 학교 측의 자가진단 표에 두통 증상을 표시했다”며 “그랬더니 학교 측에서 ‘모니터링 대상자’ 라며 연락을 해왔는데 그냥 진통제 먹고 경과를 지켜보라는 말만 했다”고 불만을 표시했는데요. 결국 이 학생은 이튿날 두통 증세가 이어졌음에도 '시험 불응시'로 인한 불이익이 걱정돼 자가진단 표에 증상이 없다고 '거짓'으로 표시하고 시험을 봤다고 했습니다.
학교 측은 이런 상황을 염려해 코로나19 유사 증상 때문에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될 경우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이렇다 할 매뉴얼을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험을 보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교수들의 평가는 강의마다 달랐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성적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날 대면 시험을 본 현모(24·고려대 4년)씨도 대면 시험을 앞두고 혼란스러웠던 심정을 털어놨는데요. “시험 기간이 시작되자 학교와 학과 측에서 자가설문 문자가 계속 왔다”며 “문자가 쌓이는 만큼 불안해 졌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측의 방역 활동이 다소 아쉬웠다는 현 씨는 “학교 측은 각 건물에 출입할 때마다 캡처한 자가진단 결과 화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지만 몇몇 건물에서는 자가진단을 했느냐고 묻기만 할 뿐 내용은 확인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고대 안암캠퍼스에서 대면 시험을 친 대학 새내기 김모(19)씨도 방역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는데요. “건물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발열검사를 반드시 해야 하는데 인원이 많으면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는 그는 "이 과정에서 거리두기는 불가능했다”고 전했습니다. 학교 당국이 방역에 철저히 신경을 쓴다 해도 과연 코로나19 전파를 막을 수 있는 확실한 해결책이 되는지는 물음표를 달게 됐다고 해요.
이 같은 불안감은 다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서울 모 대학 3학년인 김모(22)씨 역시 같은 걱정이었습니다. 김씨는 “앞 뒤 간격을 띄워서 준비했다고 분명 전해 들었는데 막상 가니 옆자리만 띄워 놓고 앞 사람과 거리는 15cm정도도 안됐다”며 “솔직히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못 느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대면 시험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학생들의 불안감도 계속되자 총학생회도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요. 고대 세종캠퍼스 총학생회장 김동현(22·고려대3년) 씨는 "대학측은 학생들과 협의해서 대면 시험 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다"며 “학교 측은 안전보다 공정성을 우위에 두고 일방적으로 대면 시험을 강행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김씨는 “최근 다른 대학에서 단체 부정 행위들이 나오는 등 비대면 시험의 공정성 논란이 제기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부정 행위가 적발된 사례의 시험 방식이 허술했을수도 있는데도 ‘비대면 시험이 부정행위가 많이 나온다’며 무작정 공정성을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2,000여 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고대 세종캠퍼스 총학생회 측은 앞서 언급된 피해 사례를 비롯해 서버 오류 등으로 인해 실시간 강의나 녹화 강의를 듣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는데요. 김 씨는 “서울 캠퍼스 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학교 측에 ‘한시적 취득 학점 포기제’나 ‘선택적 P/F제도(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며 “캠퍼스간 대표자 협의회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아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최근 대면 시험 강행으로 600여 명의 자가격리자가 발생한 한양대를 비롯해 중앙대, 경희대 등 서울 내 다른 대학 총학생회들도 학교 측에 선택적 P/F제도 도입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등록금 환불·반환 문제에 이어 대면 시험 강행으로 인해 또 다른 논란에 맞닥뜨린 대학들이 학생들을 납득시킬 만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어쨌든 당분간 학생 사회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