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에 검사가 구형한 벌금형 보다 무거운 징역형을 내린 판사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례적인데 동물학대에 대해 왜 엄정한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그가 쓴 3,000자에 달하는 판결문은 동물보호단체는 물론 반려인들 사이에 회자가 됐다. 화제가 된 주인공은 유정우(41) 울산지방법원 판사다.
유 판사는 25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경의선 숲길 고양이 살해사건이 있었을 때 범행 경위와 동기, 방법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현재 우리의 동물보호법 처벌 수위가 외국과 비교해 낮다는 점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물권이 상당 부분 인정된 외국의 사례나 동물권에 대한 국내 논의 과정, 학자들의 논문을 찾아보면서 판결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 10월 피고인 이모씨는 건설현장에서 생후 4,5개월 된 강아지를 약 6개월에 걸쳐 발로 차고 목을 밟는 등 동물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달 초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원을 구형했는데 유 판사는 이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동물을 죽인 게 아니라 학대한 행위에 대해 징역형이 선고된 것은 드문 일이다.
유 판사는 판결문에서 양형 이유에 대해 “동물 역시 생명체로서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썼다. 이어 “동물학대 행위를 방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가장 미약한 존재에 대한 폭력적이고 잔인한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며 “이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물학대의 위법성을 낮게 평가한다는 것은 사회가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나 차별적·폭력적 행동을 간과하거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 약했다는 지적과 관련 유 판사는 “우리 사회 전반에 과거 동물 학대행위의 심각성이 퍼져있지 않았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하거나 벌금형이 청구돼 실제 정식 형사재판에서 심리가 이뤄진 경우도 많지 않았다”며 동물학대 범행 자체에 대한 법적 심판이 많지 않았던 것도 처벌이 약했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유 판사는 “반려동물에 대한 유기나 방임, 정신적 학대행위가 현재 동물보호법으로는 처벌이 어려운 데 이는 입법이나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아동복지법에서는 아동학대 행위의 유형을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놓았다”며 “동물보호법도 그와 같이 규정이 손질된다면 지금보다 더 동물학대 행위를 예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국내에서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 약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민법에서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 판사는 “독일을 비롯해 동물을 단순히 권리의 객체로 보지 않는 외국의 입법사례가 늘고 있다”며 “우리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우리 사회 전체의 뜻을 모아서 정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한다고도 했다.
유 판사는 동물을 키운 적은 없다. 다만 그는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해서 실내동물원을 종종 가는 편인데 요즘은 실내동물원 내 동물의 처우나 위생상태가 괜찮은지 의문”이라며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