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대북ㆍ대남 확성기’

입력
2020.06.25 07:30
[케이스 스터디] 1962년 처음 등장… 노무현 정부 때 첫 철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던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사라졌다고 합니다.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그것. 바로 ‘대남 확성기’입니다.

북한이 대북전단(삐라) 살포 등에 반발해 최전방 지역에 재설치한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사흘 만인 24일 다시 철거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대남 군사행동 보류를 지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북ㆍ대남 확성기가 설치됐다가 철거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확성기는 남북관계에 따라 설치와 철거를 반복해왔습니다. 남북은 관계가 개선되면 대남ㆍ대북 방송을 중단하거나 확성기를 철거했고, 다시 나빠지면 접경 지역에 다시 확성기를 갖다 두곤 했어요. 확성기가 남북 관계 상황을 진단해볼 가있는 일종의 가늠자인 셈이죠.

확성기, 대체 누가 먼저 설치한 건데?

확성기를 먼저 설치한 건 북한이었어요. 그 시작은 무려 58년 전,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한은 6ㆍ25 전쟁 휴전 이후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최전방 근무 군인의 월북 등을 유도하기 위해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이에 뒤질세라 이듬해 5월 서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맞불격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처음으로 실시했어요. 그렇게 약 10년 동안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이 계속됐습니다.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의 영향으로 확성기 방송은 같은 해 11월 전면 중단됐어요. 물론, 방송만 중단했을 뿐 확성기를 철거하진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남북 사이의 화해 분위기가 식자 북한이 1980년 9월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우리 군도 대응 조치로 다시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남북 대결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확성기가 처음으로 철거된 때는 42년 만인 노무현 정부 2년차인 2004년이었어요. 6ㆍ4 남북 2차 장성급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2004년 6월 남북 모두 확성기를 철거한 겁니다. 당시 북한은 확성기 방송이 한밤 중 개성 지역까지 들린다며 방송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심리 방송이 이어지던 휴전선 일대에 그렇게 고요함이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확성기는 어쩌다 다시 등장한 거야?

고요함을 먼저 깬 건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대북 확성기를 일부 재설치한 겁니다. 다만 실제 방송은 유보한 상황이었고요. 재설치한 확성기에서 방송이 들리기 시작한건 5년 뒤의 일이었어요.

2015년 8월 발생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기억나시나요? 분노한 우리 군은 도발의 보복 조치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북한은 당시 “48시간 내 대북 확성기 철거”를 요구하며 포격 도발까지 감행하기도 했죠. 남북간 합의에 따라 방송은 중단됐으나, 이 약속은 북한이 4차 핵실험으로 인해 반년밖에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철거됐던 확성기는 비록 사흘이었지만, 2년 만에 재등장하면서 한반도에 긴장감을 유발했는데요. 적대감과 갈등의 상징인 확성기. 이대로 역사 속에 묻어둘 순 없는 걸까요?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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