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단 한번의 기회인데…" 성지순례 일정 취소에 좌절도

입력
2020.06.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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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르바란과 하지 하지 평균 대기 17~20년, 코로나 탓 역대 두 번째 취소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너무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죠. 이 어려움도 신의 뜻이니 이해합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남부수마트라주(州) 팔렘방에 사는 누르딘 하디나타(72)씨는 최근 한국일보에 올해 정기 성지 순례(하지)가 취소된 소감을 밝혔다.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그는 하지 적금으로 하지 등록비를 마련한 뒤 5년 전 신청했고 이번에 선정됐다. 또래들이 보통 신청 후 10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걸 감안하면 운이 좋았지만 세계적 전염병 대유행이 일생의 꿈을 보류시켰다. 그는 "건강하게 1년을 버티겠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차로 이달 27일 출발 예정이던 올해 하지 일정을 취소했다.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외국인 참가를 사실상 막는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발목을 잡았다. 2억7,000만 인구의 87%가 이슬람교를 믿는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가 하지 취소를 공식 발표한 건 1947년 독립전쟁 이후 두 번째다. 내년으로 순연할 거란 얘기가 들리지만 확실치는 않다.

하지는 무슬림의 5대 의무(신앙고백, 하루 5회 기도, 라마단 금식, 빈민 구제, 하지) 중에서도 핵심이다.  이슬람력 12월(올해는 7월말~8월)에 메디나와 메카 등을 6일간 순례하는데 보통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일정이다. 재력뿐 아니라 시간과 건강까지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라 죽기 전 한 번이라도 하지에 참여하는 게 평생 소원이다. 다른 선행으로 하지 의무를 대신하는 무슬림도 많다.

매년 수백만 명이 몰려드는 하지를 관리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각 무슬림 국가에 하지 인원을 배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올해 하지 할당 인원은 2억3,500만 무슬림의 0.09%인 22만1,000명으로 1,000명당 1명이 채 안 된다. 지난해 대선 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1만명 더 추가할 수 있게 됐으나 확정되지는 않았다.

인도네시아 각 지역별로 다시 할당 인원을 나눈 뒤 신청한 순서대로 하지를 보내는 게 선정 절차이다. 평균 대기 기간은 17년으로 신청이 몰리는 일부 지역에선 20년 이상 기다려야 차례가 올 정도다. 할당을 따로 둬 노인을 우대하긴 하지만 신청 후 65~85세는 10년, 85~95세는 최소 5년, 95세 이상도 3년을 기다려야 한다.

개인이 내는 돈은 3,500만루피아(300여만원)다. 수도 자카르타 올해 최저임금이 426만루피아(37만원)이니 빈자들은 1년 가까이 한푼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지방에선 그 두 배 넘는 기간이 필요하다. 반면 부자들은 1억루피아가 넘는 특별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자카르타 회사원 헤르만(38)씨는 "당장 아이들 교육에 쓸 돈도 부족한 처지라 하지는 너무 먼 꿈"이라며 "하지는 '필수' 의무에서 '형편이 허락되면' 지키는 선택 사항으로 묵인되고 바뀌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하지 최고령 기록은 107세로 지난해 메카를 순례하고 돌아온 1912년 6월 1일생 수미아티 할머니가 가지고 있다. 그는 104세 때인 2016년 하지를 신청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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