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12일. 남한 금강 부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뒤 미군 병사 한 명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남성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미 육군은 총 맞아 쓰러진 이 사람을 찍은 사진에다 '북한군 병사'라 적어뒀다. 하지만 군인이라기엔 이상하다. 흰 광목 바지저고리, 고무신, 밀짚모자, 떨어진 곰방대까지. 아무리 봐도 그냥 지나가던 주민 아니었을까. 진실은 알 길이 없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한국 근현대사 사진을 전문적으로 수집하고 기획 출판해온 ‘눈빛’이 그동안 보관해놨던 미공개 사진에 해설을 넣어 ‘끝나지 않은 전쟁, 6ㆍ25’ 사진집을 펴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자료를 중심으로 출판사가 오랫동안 모아온 사진 300여장을 엮었다. 90% 이상이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사진집을 기획한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서문에서 ‘전화(戰禍)에 신음하는 한반도와 한민족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전후 한국에서 출간된 사진집들은 오히려 전쟁을 고무하는 쪽에 치우쳤다. 이데올로기 전쟁이 남긴 그늘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의 이면과 참상을, 피아 구분 없이 부각했다. 이념과 권력 다툼, 얽히고설킨 국제정치란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이들에겐 그저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북이 차례로 좌익과 우익을 처형한 전주교도소의 집단 매장지, 서울 수복 후의 부역자 처형 사진 등은 처참했던 학살의 기록이자, 질곡의 역사다. 남이 북을 죽이고, 북이 남을 죽이며 인간은 야수와 괴물로 돌변했다.
3년의 전쟁 기간 동안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만 300만명(국방연구소 자료). 그 중 민간인은 남북한 각각 110만명씩, 총 220만명이 희생됐다. 홀로코스트 유대인 희생자가 600만명이었으니 한국전쟁은 제2의 홀로코스트라 할만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홀로코스트는 동족간에 벌어졌고, 누구도 책임 지지 않고 70년을 묻어두고 지내왔다는 것. 학살사건은 피해자들과 유족을 연좌제로 꽁꽁 묶어 오랫동안 진상규명조차 불가능하게 했다.
책은 말한다. 전쟁사진은 반전사진이 돼야 한다고. 전쟁의 참상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거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 사진들을 보며 얻어야 할 것은 적개심이 아니라 전쟁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