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한류의 진원지라고 자부하는 도쿄 신주쿠의 오쿠보(大久保)ㆍ쇼쿠안(職安)거리. 300여개의 한국음식점과 상가 등이 몰려 있는 이 곳에서는 코리안 타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한국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곳을 주요 기반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특히 1980년대 여행자유화조치 이후 일본에 건너와 정착한 사람들이다.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동포1세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는 재일동포들과 구별하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뉴커머’(New Comerㆍニュ-カマ-)라고 부른다.
일본 사회에서 나름대로 고생하며 성장해 온 뉴커머들이 최근 동포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물론 한일정부가 맺은 기본조약에 따라 특별영주자격을 인정 받은 재일동포와는 법적지위부터가 다른 존재다. 통칭 뉴커머이지만, 영주권 등을 받아 비자 갱신 없이 체류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일본에 생활기반을 갖고 살아가는 한국인은 벌써 18만 명으로 늘어났다. 일본유학파와 한국기업의 일본주재원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들은 일본에서 성공을 꿈꾸는 자발적 이민자라는 점에서 도리어 앞으로는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재일대한민국민단 등은 최근까지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뉴커머 스스로도 철저히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일본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10년 전까지 만해도 뉴커머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한국인에게도 자신을 밝히기를 꺼려했다”고 말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감이 강했고, 밑바닥 시절의 감추고 싶은 과거가 드러나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역시 기업을 경영하는 B씨는 “일본사람도 아니고 같은 뉴커머에게 속아 사업이 어려움을 겪은 후부터는 누구도 믿지않기로 결심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가기 힘들게 된 뉴커머들은 자신들의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자식들이 태어나고 성장하자 더욱 더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를 열망하게 됐다.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둔 2001년 5월에는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가 설립됐다. 국민의 정부 이후 한일간의 급격한 관계 개선이 중요한 배경이 됐지만, 뉴커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인회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인봉(李仁鳳) 한인회 발전특위 위원장은 “곧 돌아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뉴커머가 어느새 18만명이라는 대집단이 됐다”며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직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었다”고 말했다.
창단 5년째를 맞는 한인회는 한인사회의 창구를 자임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행사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나누는 일을 해 왔다.
전문가들을 한인회 상담역으로 위촉해 의료 법률 생활 세무 교육상담을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19일 저녁 신주쿠 오쿠보의 한인회 사무실에서 열린 월례회에서 무보수로 일하고 있는 임원들은 조직발전과 확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차이나타운은 한인회가 추구하는 모델 중의 하나이다. 화교총회를 중심으로 뭉쳐있는 중국인들은 요코하마(橫浜)를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공동출자를 통해 중국음식점을 만들고, 그 수익을 중화학교에 재투자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한인회는 질적 양적으로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신주쿠 상인회’라고 비아냥거리며 대표성을 문제 삼는다.
이들 가운데 영주권 등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6만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기적으로 비자를 갱신 받고 있어 서로 이질감도 크다. “민단이 있는데 별도의 한인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회는 민단-조총련 구도로 정체돼 있는 동포사회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자유분방한 신세대 제일동포의 등장으로 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민단도 한인회를 뉴커머의 대표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하는 한국인의 수는 갈수록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미래지향적으로 본다면 신세대 동포와 뉴커머, 나아가서는 미래지향적으로 총련까지 아우를 수 있는 공동체와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재일한국인의 단일조직은 모든 구성원의 힘을 키우고 일본에서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옥제(趙玉濟) 한인회 회장은 “결국은 같은 핏줄끼리 뭉쳐야 힘이 된다”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동포들이 잘 살아서 조국에 힘이 돼 주어야 하고, 조국은 이들을 어떻게 국력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숙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