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계엄 사태의 주동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첫 정식 공판에서도 검찰 수사권을 문제 삼아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병합돼 함께 피고인석에 섰던 군 지휘관들도 김 전 장관을 거들며 혐의의 중대성을 축소하려고 했다. 재판부는 "'홍장원 메모' 필적을 확인해달라"는 피고인들 요청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본격 증인신문을 예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는 17일 오후 2시 김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제3야전군사령부 헌병대장(예비역 대령)의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당초 세 사람은 따로 기소됐으나, 재판부는 지난달 27일 마지막 준비기일에서 내란 혐의 피고인 가운데 이들 사건에 대한 병합을 우선 결정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적법 요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위헌·위법 행위"라는 취지로 공소 요지를 밝히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들과 함께 불법계엄을 사전 공모하고 '체포조 운영'과 '국회 봉쇄' 지시 등에 깊숙이 가담한 정황을 다수 언급했다.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 김 전 대령이 "군 지휘통솔권과 지휘감독권한에 대한 직권을 남용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이에 "검찰에는 내란죄 수사권 자체가 없는데 공소장마저도 혐의 내용 특정을 못 하고 있다"며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계엄군을 출동시킨 것을 두고는 "평상시에도 수행하는 출입 통제를 한 게 어떻게 폭동이 될 수 있느냐"며 "대민 업무하는 모든 공무원들 권한 행사는 다 폭동 행위가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발언권을 얻어 검찰이 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정 상황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대 야당의 패악질을 여야 갈등으로 둔갑시키려는 것 같다"며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유임을 계엄과 연결시키는 건 내 명예와 관련돼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과 모의 의혹에 대해선 "어떻게 감히 (불법을 전제하는) '공모'라고 표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 진행 방식을 둘러싼 신경전도 이어졌다. 검찰이 피고인들에 대한 범죄사실을 낭독하며 윤 대통령을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지칭하자, 김 전 장관 측은 "장관은 그렇다 해도 대통령은 국가원수인데 호칭을 (윤 대통령으로 해달라)"이라고 딴지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대령 측은 "김 전 장관 주장을 원용한다"며 자신들은 계엄 사태의 '지시자'가 아닌 '조력자'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양측 의견을 청취한 재판부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성된 공소사실 중 '선관위 점거' 관련 입증을 먼저 하겠다는 검찰 요청을 받아들여 2차 공판기일인 27일부터 증인신문을 시작하기로 했다. 김 전 장관 등이 '체포조' 혐의를 뒷받침하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메모에 대해 대필 가능성을 제기하며 필적 감정을 신청하자, 재판부는 "필요한 이유와 방식을 자세하게 신청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