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DOE)가 원자력·에너지·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되는 '민감국가' 명단(SCL)에 한국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자 여야 정치권은 17일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했다. 왜 한국이 포함됐는지 우리 정부가 이유조차 밝히지 못한 상황인데도, 각자 국내 정치 상황에 유리한 논리를 만들어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
국민의힘은 "친중·반미 노선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력 대권후보라 민감국가로 지정됐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국익보다 당리당략이 우선하는 한국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단 평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상황에서 권한대행도 탄핵하고, 친중·반미 노선의 이재명과 민주당이 국정을 장악한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이런 인물이 유력 대권후보라고 하니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동혁 의원은 국회의 윤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에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을 중시하는 외교 정책'이 명시됐다는 점을 문제 삼아 "이 대표와 민주당발 외교·안보 리스크는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지목한 윤 대통령 탄핵안이나 한덕수 총리 탄핵 등은 지난해 12월 상황이다. 반면 미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건 올 1월이다. 억지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은 "(민감국가 지정은) 여러 분야의 정보 파트가 협력을 해가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식별해서 지정을 하는 것"이라며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파악을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핵무장론'을 지목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1년 안에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느니, 핵무장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이런 허장성세성, 현실성 없는 핵무장론이 대한민국 국가체제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민감국가 지정으로 나타났다"며 "완벽한 외교 참사이자, 정부 실패"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12·3 불법계엄 당시 미국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함부로 동맹국가에 대한 통보나 언질 없이 계엄을 선포하고 연락조차 응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그러자 잠재적인 핵무장 능력을 갖추자고 주장해온 여권 잠룡들이 맞받아쳤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런 중요한 시점에 이 대표는 '첨단산업에서 한미 공조가 제한될 것은 명백하다'는 식의 자극적인 발언만 쏟아내고 있다"며 "민주당이 줄탄핵으로 정부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켰는데, 정부가 외교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협조부터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미국이 민감국가 지정 이유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무슨 근거로 핵무장론이 그 원인이라고 단언을 하느냐"며 "정치적 목적으로 근거 없는 선동을 하는 거라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민감국가' 지정을 철회해달라는 국회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기로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또한 "외교적 문제이니 초당적으로 대응하고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24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출석시켜 이번 사태를 다룰 현안질의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