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로봇 가운데 국내에서 성장성이 가장 높은 분야가 물건이나 음식을 나르는 배달 로봇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배달 로봇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이 40%로 세계에서 가장 높아 2021년 271만 달러(약 39억 원)에서 2026년 1,465만4,000달러(약 212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던진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이 뉴빌리티다. 이상민(28) 대표가 2017년 설립한 이곳은 자율주행 배달 로봇을 만든다. 이 업체에서 내놓은 자율주행 배달 로봇 '뉴비'는 202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고 2023년에만 약 4,500건의 배달을 수행했다. 서울 왕십리로 뉴빌리티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로봇 도전기를 들어봤다.
연세대 천문우주학과를 나온 이 대표는 원래 로켓을 만드는 우주공학자가 꿈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천문학 강의를 듣고 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지금도 매일 망원경으로 별자리를 봐요. 별을 보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오래전 과거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죠. 이를 통해 과거, 현재가 연결됐다고 느껴요."
느긋한 취미와 달리 창업은 대학 2학년 때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 프로바둑기사를 꺾었을 때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무엇을 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친구들과 무조건 창업했다. 그의 나이 만 19세였다. "돈 버는 것보다 내가 만든 기술을 세상에서 많이 사용하면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무모했죠."
그때 두 명의 은인을 만났다. 학원으로 유명한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과 스타트업 육성업체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다. "식당에서 떠드는 것을 옆에서 손 회장이 우연히 듣고 명함을 주며 찾아오라고 했어요. 최초 투자자인 손 회장은 사업계획서를 보고 이것은 사업이 아니라며 5,000만 원을 줄 테니 시장이 있는 사업을 하라고 조언했어요.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만난 류 대표도 같은 얘기를 하며 '사업할 자세가 되지 않았다'며 야단쳤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자율주행 로봇이에요."
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며 비대면 환경에 필요한 로봇이 관심을 끌었다. 여기 맞춰 2020년 자율주행 로봇 뉴비를 개발했다.
뉴비는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해 목적지까지 찾아가 스스로 승강기를 타고 현관문 앞이나 사무실 안까지 물건을 배달한다. 시속 10㎞로 달릴 수 있으나 안전을 위해 시속 7.2㎞로 제한했다. 몸체에 20㎏까지 담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어서 서류 등 물건과 음식 등을 보관한다. 또 상부에 각종 장치를 달면 소방이나 보안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인천경찰청, SK쉴더스 등과 협력해 순찰 로봇도 만들어 지난해 말부터 가동하고 있어요."
이 대표가 로봇을 개발하며 고집한 것은 한 가지, 눈이다. 뉴비는 몸체에 동그란 눈이 달려 있다. 액정화면 형태의 눈은 웃는 모양 등 표정을 나타낸다. "로봇을 친근하게 느끼려면 눈이 있어야 해요. 앞으로 뉴비의 상징인 눈은 계속 유지할 겁니다."
로봇은 소프트웨어인 로봇 지능이 발전해야 성능이 개선된다. 이 대표가 로봇 지능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그는 '뉴빌리티넷'이라고 부르는 로봇 AI를 개발했다. 뉴빌리티넷은 따로 떼어 팔 수도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하는 국내 대기업과 중국 기업이 뉴빌리티넷을 구입했어요. 국내 방산업체, 중국 로봇업체와 추가 판매를 논의 중이죠."
배달 로봇을 개발한 이유도 로봇 지능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업체 테슬라의 자율주행 차량과 같은 개념이죠. 로봇이 달리며 인식하는 모든 것이 AI 개발의 데이터가 돼요. 현재 뉴비는 서울 강남과 전남 여수, 강원대 삼척캠퍼스와 덕성여대 등 대학가, 캠핑장, 골프장 등을 누비며 배달 일을 하죠."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일본은 배달과 순찰 로봇에 관심이 많아 일본 기업들과 손잡고 도쿄에서 올해 실증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의 로봇 인증 절차를 밟고 있어요. 미국에는 연내 지사를 설립할 방침입니다."
매출은 지난해 25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 90억 원이 목표다. 다행히 로봇 주행 규제가 풀려 매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그동안 배달 로봇은 자동차처럼 도로교통법 규제를 받아 인도나 횡단보도를 통행하지 못했다. 지난해 배달 로봇에 보행자 지위가 부여돼 인도 주행이 가능해졌다. 대신 주행 속도를 7.2㎞로 제한했다.
투자는 지금까지 퓨처플레이, 캡스톤파트너스, 신한캐피탈, 삼성벤처투자,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등에서 315억 원을 받았다. "상반기 중 200억 원을 목표로 추가 투자 유치를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그는 팔, 다리가 달린 로봇도 개발할 계획이다. "비서처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두 개의 팔이 달린 로봇을 올해 먼저 내놓을 예정이에요."
그는 국내 로봇 산업 발전을 위해 데이터 댐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리적 AI인 로봇 산업이 발전하려면 정부가 AI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를 대량 확보하고 데이터도 모아 놓아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댐을 만들어야 해요. AI의 후버댐 같은 것이죠. 우리는 인구 대비 로봇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여서 이를 잘 활용하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시험대가 될 수 있죠."
다만 로봇이 늘어나면 일자리 대체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그는 로봇세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로봇세는 로봇 도입으로 비용 감축 등 이득을 보는 기업들에 세금을 걷는 것이다. "로봇이 발전하면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로봇이 대체하는 저임금 노동자 등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로봇세 같은 제도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