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땐 야권 뜨거운 감자로… '오픈프라이머리'가 뭐길래?

입력
2025.03.16 07:00
美 위스콘신에서 20세기 초 제정
당원뿐만 아닌 온 국민 경선 참여
중도층 민심 반영 등 장점 있지만
"정당 민주주의 훼손" 지적도 나와


"광장의 '응원봉 민주주의' 정신을 받들어 차기 대선에 야권 전체가 참여하는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를 도입해야 합니다."

조국혁신당이 지난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에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촉구하며 해당 논의에 불을 지폈다. '완전국민경선'으로 번역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정당의 공직자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Primary) 투표권을 당원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개방(Open)하는 선거제도를 일컫는다. 반대 개념으로는 당원만 경선에 참여하는 '클로즈드프라이머리(Closed primary)'가 있다.

혁신당의 제안에 머리를 맞대나 싶던 야권은 관련 논의를 잠시 중단한 채 광장으로 나섰다. 나흘 뒤인 같은 달 8일 윤석열 대통령 석방으로 위기감이 고조되자, 헌법재판소에 조속한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촉구하기 위해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현 상황에선 오픈프라이머리 논의보다 '내란 사태 종식'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조만간 헌재 선고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 개최가 확정되면 오픈프라이머리는 야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제도 자체의 장단점이 선명한 데다, 도입을 둘러싼 대선 후보들 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천' 논란 해소하는 '상향식 공천'

오픈프라이머리는 1903년 미국 위스콘신주(州)에서 제정된 제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 주로 활용된다. 미 대선 후보의 경선 방식은 크게 △예비선거인 '프라이머리' △당원대회 형태인 '코커스(Caucus)', 이렇게 둘로 나뉜다. 이 중 프라이머리는 비(非)당원에게 얼마나 투표권을 개방하느냐에 따라 ①'오픈' ②'클로즈드' ③'하이브리드(절충형)' 프라이머리로 다시 구분된다. 미국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시행 중인 주는 위스콘신을 비롯해 텍사스, 미주리, 미시간 등 19곳이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는 주의 유권자는 누구나 현장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에게 투표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선출된 대의원이 다시 전당대회에서 각 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중앙당이 선거 후보자를 공천하는 방식과 달리, 시민이 직접 후보자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상향식 공천' 모델로 꼽힌다. 선거 후보 선출이 당대표 등 당내 핵심 권력층의 입김에 좌우되는 '사천(私薦)'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된다. 미국에서 오픈프라이머리가 처음 도입됐던 이유도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2015년 2월 한국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 후보자 추천의 민주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경선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냈다.

일반 국민이 경선에 참여하는 제도의 특성상, 민심을 보다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보수·진보 진영이 각각 결집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차기 대선 승리의 키 역시 무당파 및 중도층이 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혁신당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제안한 이유 중 하나도 박빙 선거에 대비해 '중원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김선민 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이 '윤석열 시즌 2'를 꿈꾸는 동안 '내란의힘' 반발력이 강해지고 있다"며 "대선 때 민주·진보 진영과 윤석열 정권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이 제안한 '범야권 오픈프라이머리'는 개별 당 차원의 경선을 넘어 전체 야당과 시민사회 추천 후보가 국민 앞에서 경쟁하는 구조다. 유권자라면 제한 없이 참여 가능한 선거인단을 모집하고, 투표를 온라인(모바일)으로 하는 구상을 세웠다. 혁신당은 이 같은 방식의 경선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도 받은 상태다. 혁신당 관계자는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훌륭한 철학을 가진 젊은 정치인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의외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반인 참여는 당원에 대한 역차별"

그러나 오픈프라이머리의 단점도 뚜렷하다. 일단 "정당 후보를 뽑는 선거에 왜 비당원이 참여하느냐"는 반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치학자들은 '정당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사유를 들어 오픈프라이머리를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오픈'이라는 단어 때문에 민주적으로 들리지만, 정작 정당에는 도움이 안 된다"며 "오랜 시간 당비를 내고 활동했던 당원과 일반인의 표 가치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당원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역선택' 문제도 있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오픈프라이머리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참여해 고의로 본선 경쟁력이 약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로 치러진 2021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해 7월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본인 페이스북 계정에 민주당 '국민선거인단' 참여를 신청한 '인증샷'을 올리며 "추미애 후보님께 마음이 간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 출신인 추 후보를 전략적으로 밀어서 당시 유력 주자였던 이재명 후보를 떨어트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오픈프라이머리의 한계로 꼽힌다. 게다가 경선에 참여하는 투표자가 늘어나는 만큼 선거 관리 비용 급증도 불가피하다. 비용 절감을 위해 현장 투표 대신 온라인 투표를 도입할 경우엔 '부정 선거'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여지도 있다.

정치 셈법에 차기 대선 도입은 미지수

한국에서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의 제16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상 최초로 비당원의 국민 경선 참여가 이뤄졌다. 당원과 비당원의 투표 결과를 절반씩 합산하는 형태여서, 완전한 오픈프라이머리는 아니었다. 당시 경선에서는 당내 비주류였던 노무현 후보가 이른바 '노풍(盧風)'에 힘입어 유력 주자로 꼽히던 이인제 후보를 꺾으며 대선 본선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민주당은 2017년 제19대 대선과 2021년 제20대 대선에서 잇따라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했다. 사전에 모든 유권자가 참여 가능한 국민선거인단을 모집한 뒤 현장 투표 및 자동응답서비스(ARS), 온라인 투표를 병행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이르면 5월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민주당이 혁신당 제안에 따라 범야권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당내에서 정치 셈법이 복잡해진 탓이다. 야권 전체가 치르는 경선에 대해 민주당 비이재명계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동연 경기지사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선 주자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비교하면 '중도 확장성' 측면에서 유리해 범야권 경선이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이 대표 입장에선 오픈프라이머리 참여 여부가 딜레마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야권 관계자는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해 승리만 한다면 '야권 통합 후보'라는 타이틀로 여당 후보와 겨룰 수 있어 이득이지만, 경선에서 보수층의 역선택이나 중도층의 외면을 받을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험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범야권 오픈프라이머리 실시 여부를 결정할 민주당 지도부는 "조기 대선 개최가 확정되면 논의할 문제"라며 말을 아끼는 중이다.

게다가 헌재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두 달 안에 대선이 치러지는 만큼, 범야권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위한 '룰 협상' 시간이 촉박한 현실도 걸림돌이다. 경선 룰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후보들 간 정치적 득실이 갈리는 터라 협상 과정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