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생을 체포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사전에 관련 활동가들을 겨냥해 광범위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검열하기 위한 '권한 남용'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구금된 학생인 마흐무드 칼릴의 변호인 접견도 제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정부 당국자를 인용, "칼릴이 8일 미 국무부에 체포되기 전 이민세관집행국(ICE)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옹호 게시물' 작성자들의 정보를 추적했다"고 보도했다.
ICE의 '하마스 지지자' 정보 수집 행위는 매우 이례적이다. ICE 수사관들은 통상 인신매매나 마약 밀수 등 강력 사건을 전담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을 '테러 위협'으로 규정하고 ICE 수사관들을 활동가 동향 파악 임무에 투입했다고 NYT는 전했다.
ICE 수사는 지난 8일 칼릴 체포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ICE 요원들은 친팔레스타인 시위 참여자 정보를 담은 보고서를 국무부에 제출했고, 이후 국무부는 컬럼비아대 캠퍼스를 습격, 칼릴을 구금하고 국외 추방 결정을 내렸다. 그간 컬럼비아대 시위를 주도했던 칼릴이 ICE 조사를 거쳐 국무부 감시망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자란 칼릴은 미국 유학을 통해 정당하게 영주권을 확보했다. 범죄 이력도 없다. 칼릴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미 행정부 주장은 무리한 '낙인찍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NYT는 "트럼프가 은밀한 방식으로 정부 권한을 반대 의견 억압에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횡은 이뿐만이 아니다. 칼릴 변호인단은 이날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칼릴과의 비공개 통화가 이달 20일에야 가능할 것"으로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칼릴 체포·추방의 적법성을 다투는 심리는 이미 시작됐는데 미 행정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피고인 접견을 막고 있는 셈이다. 변호인단은 "심각한 방어권 침해"라고 항의했고, 재판부도 "이틀 내 접견을 허용하라"며 칼릴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칼릴 추방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국무부는 "미국 외교 정책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외국인을 추방할 수 있다"는 이민·국적법 조항을 근거로 칼릴을 미국 땅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빌 힝 샌프란시스코대 법·이민학 교수는 영국 가디언에 "칼릴의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이 어떻게 미국 외교 정책을 위협하는지 전혀 증명되지 않았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