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어르신'보다 좋은 이름 짓기

입력
2025.03.13 00:00
27면

세월 속에 차별 의미 갖는 호칭
탈북자, 실향민이 대표적 사례
'꽃'같은 이름짓기에 관심 둬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존재는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참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는 사회적으로 결정되므로, 편견과 차별을 받는 대상은 그런 의미를 가진 이름으로 불리고 원래는 차별적 의미를 가지지 않았던 이름도 대상이 차별받게 되면 차별적 호칭으로 변질된다.

'다문화 가족' '다문화 청소년' 등 '다문화'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2008년 국제연합 인권위원회는 '혼혈'이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했고, 이에 따라 정부는 '다문화 가정 자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새 학교에서 선생님은 "다문화 손 들어봐"라고 말하고, 학생들은 다문화 가족 출신 친구에게 "야, 다문화"라고 부르는 행태가 발생한다. 사람들을 한데 묶어서 이름 붙이고 그 이름에 편견이 담기게 되면 그것은 차별의 도구로 전락한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는 열등하고 취약한 집단을 뜻하게 되었다. 결국 '다문화'라고 부르면 부를수록 그들과 우리의 다름을 강조하는 꼴이다.

'탈북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을 탈출해 다른 나라에서 체류하는 북한 출신자를 지칭하는데,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시대 상황에 따라 숨 가쁘게 변화했다. 최초 호칭은 '월남인'으로 해방 이후 남한에 정착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실향민' 혹은 '이산가족'이라는 용어도 사용되었다. 전후에 분단의 아픔을 지닌 희생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호칭이었다. 다음에 등장한 것은 '귀순용사'였다. '귀순'은 적이 굴복하고 순종한다는 뜻으로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북한 체제와 비교해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이렇게 불렀다. '북한이탈주민'이라고도 불렸다. 이 이름이 북한을 이탈했다는 사실만 부각시킬 뿐 남한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주변인을 암시한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새터민'을 제안하였다. 그런데, 이 역시 모든 탈북자를 온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긴 이름 변천사 속에서 탈북자는 완전한 한국인이 되지 못하고 소외된 존재로 머문다.

'어르신'도 마찬가지이다. "어르신, 건강하세요." 지하철역에서 65세 이상 경로 우대 승객이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나오는 안내 음성이었다. 서울교통공사가 2023년 시범 운영한 뒤 확대할 계획이었는데, 어르신들의 불만이 쇄도하자 '어르신' 표현을 없앴다. '어르신'은 1998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노인'은 신체적으로 노약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며, 대체어로 선정하면서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노인에 대한 편견이 심해지면서 부정적 용어로 전락하였다. 어르신이라는 극존칭은 노인들을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사회 밖에 저 멀리 있는 어떤 존재로 간주하며 영역 바깥으로 밀어내는 듯하다. 이에 '시니어' '장청년(長靑年)' '선배 시민' 등의 대체 용어가 논의된다.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좋아할까? 한 대상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이름 짓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좋은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주자. 아름다운 꽃이 되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도록.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