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이 조속히 편성되지 않는다면 올해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가 어려워 심한 보릿고개가 예상된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처 핵심과제 추진 현황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빠른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을 추격하려면 AI의 두뇌에 해당하는 GPU를 대량 확보해야 하지만, 국회의 추가경정예산 논의에 속도가 붙지 않아 한국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총 1만8,000개의 고성능 GPU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발표한 ‘국가 AI 경쟁력 확보 방안’에 따라 우리 기술로 세계 선두 수준의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들고 AI 인재를 양성하려면 GPU 같은 기본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 그러나 정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보유 중인 GPU는 2,000여 개 정도에 불과하다. 단 네이버와 카카오는 조사에 응답하지 않아 보유분이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가 각 15만 개의 GPU를 보유한 것과 현저한 차이다.
유 장관은 “예산 문제로 2026년이 돼야 GPU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올해가 가장 우려스러운 해”라며 “AI 분야에서 9개월 정도 공백이 생기면 경쟁국보다 3년 정도 기술이 뒤처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등장 계기로 국회에서는 AI 추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국정협의체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탄핵정국 등의 여파로 여야 간 합의가 미뤄지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GPU 부족에 대비해 대기업 보유분 중 스타트업이나 연구 현장에 공유할 수 있는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고급 AI 인재 확보와 관련해 정부는 해외 우수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과기정통부는 이달 중순 산업계 및 연구기관과 간담회를 통해 고급 인재 수요를 조사하고 해외 AI 인재 유치 관련 의견 수렴을 할 예정이다. 유 장관은 “국내에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해외 유수 대학과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라며 “이들이 우리나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유턴 시그널'을 보내 설득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다음 달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 시행령 초안 및 가이드라인 제정 방향에 대한 의견 수렴도 추진한다. 전문가 80여 명이 마련한 초안을 바탕으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시행령을 구체화한다는 설명이다. 유 장관은 “하위 법령에 담기는 규제는 가급적 최소화하고, 고위험 AI를 명확히 정의해 산업 진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