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한에 전략원자력잠수함 기술 넘겨줬나

입력
2025.03.11 14:00
25면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지난 2023년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고 주장하는 '김군옥영웅함'을 공개한 북한이 2년 만에 새로운 잠수함 건조 현장을 공개했다. 3월 8일 자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중요 조선소들의 함선 건조 사업을 현지 지도했다면서 현재 건조 중인 신형 호위함과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건조 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에는 그동안 북한이 건조한 그 어떤 군함들보다 큰 대형 수상전투함과 거대한 잠수함 압력선체 아랫부분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신형 호위함은 레이더와 소나, 수직발사기 등 핵심 장비가 장착되기 직전의 모습이었고, 잠수함은 가대(Trestle) 위에 있는 상태였는데, 압력선체 모듈 조립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즉, 호위함과 잠수함 모두 상당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2년 만에 새 잠수함 건조 현장 공개한 북한

북한은 2019년 김군옥영웅함 건조 당시에도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사진과 함께 보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공개된 사진에는 선체 대부분의 모습이 드러나 이 잠수함이 구형 로미오급 잠수함의 압력선체를 가져다 쓴 ‘프랑켄슈타인 잠수함’이라는 사실이 들통났었다. 그래서인지 현지지도 보도에서는 잠수함의 형상이나 크기 등의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히 일부분의 모습만 공개됐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잠수함은 북한 측 주장대로 핵동력, 즉 원자력 추진 잠수함일까?

북한의 핵잠수함 건조 주장은 크게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정치적 목적의 허풍일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핵잠수함이 건조되고 있을 가능성이다. 북한은 과거 사례를 교훈 삼아 이번 현지지도 보도에서는 잠수함의 크기나 형상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를 흘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생각해봐야 한다.

북한은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핵잠수함 건조가 불가능한 나라다. 2년 전 공개된 김군옥영웅함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북한은 이런 유형의 대형 잠수함, 정확히는 정상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한 잠수함을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가 없다. 잠수함은 현대 조선 기술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첨단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혹자는 북한이 대량으로 건조한 소형 잠수정, 남미 마약 카르텔이 가내 수공업 형태로 건조해 카리브해에서 쓰고 있는 잠수정의 사례를 들며 잠수함 건조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어뢰와 미사일을 싣고 심해에서 작전하는 잠수함은 그런 원시적인 잠수정과는 완전히 별개의 군함이다. 선체를 수면 바로 아래까지 숨기면 그만인 잠수정과 달리 잠수함은 깊은 바다 속에서 장기간 잠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라 주장하지만

일반적으로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은 200~300m 심도에서, 핵잠수함은 최대 600m 심도까지 내려가 작전한다. 물속에서는 10m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압력이 증가하는데, 이 때문에 일반 선박을 만드는 강재로 잠수함 선체를 만들었다가는 수십 미터도 채 내려가지 못하고 선체가 찌그러진다. 잠수함은 항복강도가 매우 높은 특수강을 사용해 선체를 만드는데, 통상 HY(High Yield)-80 이상의 특수강이 잠수함 압력선체용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HY강은 강재 제조는 물론, 성형과 용접도 어렵기 때문에 어지간한 철강기술 선진국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잠수함을 독자 건조할 수 있는 나라가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강 산업이 매우 낙후된 북한이 이러한 특수강을 자체 제작·가공해 압력선체를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이 김군옥영웅함을 만들면서 구형 로미오급 잠수함의 압력선체를 잘라서 이어 붙인 것도 압력선체를 만들 기술과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잠수함을 만들면 정상적인 잠항이 불가능하고, 일정 심도 밑으로 내려가면 선체가 찌그러질 수 있다. 지난해 이 잠수함이 첫 시험항해에서 침몰할 뻔했다가 간신히 복귀해 오랫동안 수리 공사를 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식 발표된 김정은의 키를 토대로 이번에 공개된 사진 속 잠수함의 압력선체 지름을 가늠해보면 최소 12m 이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잠수함 압력선체 지름이 커질수록 버텨야 할 수압도 커지기 때문에 더 강력한 특수강을 써야 하는데, 북한에는 그런 특수강을 만들 기술이나 철강 산업 인프라가 없다.


허풍 아니라면 러시아 기술로 만드는 잠수함일 가능성

이번에 공개된 잠수함의 정체가 허풍이 아니라 사실일 경우 이 잠수함은 설계부터 건조 모든 과정에 러시아가 개입한 잠수함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은 선박용 원자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잠수함용 원자로는 지상에 설치되는 원자력 발전소용 원자로와 그 구조가 상당히 다르다. 3차원 기동하는 선체 안에서 원자로가 기울거나 뒤집어져도 정상 작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자로를 새로 개발해 잠수함 동력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상에 시험용 원자로를 건설하고, 이를 동력장치와 연결해 안전성을 실험하는 시설, 일명 선박육상시험소(LBTS)가 먼저 건설돼야 한다. 그런데 북한 어디에서도 선박용 원자로 건설·실험 정황이 식별된 적은 없었다. 선박용 원자로 개발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원자력 잠수함이 건조되고 있다면, 외부에서 원자로와 동력계통을 조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앞서 언급한 특수강 역시 북한이 자체 생산·가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잠수함에 들어가는 음파탐지기(소나) 역시 상당한 수준의 전자기술이 필요한 장비여서 북한이 독자 개발·생산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이 건조하고 있는 이 잠수함이 강재와 원자로, 소나 등 대부분의 부품들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건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의 현지지도 장소가 어디라고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장소를 완전히 감추지는 않았다. 신형 호위함이 건조되고 있는 현장의 위장막 사이로 보이는 건물들은 그곳이 청진조선소임을 식별 가능케 했다. 북한은 최근 청진조선소에 대형 크레인을 추가로 설치하고 시설 현대화 사업을 진행한 바 있는데, 김정은이 시찰한 조선소가 한 곳이었다면 이 신형 잠수함은 대형 실내 독(Dock)이 있는 청진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함경남도 신포에 있는 잠수함 건조 인프라를 놔두고 이곳에서 잠수함을 건조하는 이유는 이곳이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청진조선소는 평라선 철도를 통해 라선시 라진구역과 연결돼 있고, 이곳은 러시아 하산과 철도로 이어져 있다. 즉, 러시아에서 기술·부품 지원을 받을 경우 청진조선소만큼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춘 곳도 없다는 것이다.


핵미사일 탑재한 북한 잠수함 실전 배치되면 국제질서 위협

북한이 건조 중인 잠수함이 SLBM을 탑재한 전략원자력잠수함 유형이고, 이 잠수함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원자로와 강재, 부품들을 조달하고 있다면, 12m 안팎의 압력선체 직경을 가진 델타-IV급 잠수함과 유사한 형상과 설계로 건조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입장에서 최신 잠수함 설계와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부담이 크지만, 델타-IV급은 1970년대 기술이고, 러시아 해군에서는 신형 보레이급 잠수함 도입에 따라 퇴역하고 있는 모델이어서 정치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북한 신형 잠수함이 델타-IV급 기술을 사용해 건조되고 있다면, 이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1만 톤을 가볍게 넘을 가능성이 있다. 김군옥영웅함과 달리,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형 SLBM을 여러 발 실을 수 있는 본격적인 전략원잠으로 완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제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잠수함의 건조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압력선체 모듈 조립이 시작됐다면 이미 원자로와 동력계통 설치는 끝났다는 뜻이고, 이는 빠르면 1~2년, 늦어도 2~3년 안에는 이 잠수함이 진수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2020년대 후반 또는 2030년대 초반이 되면 동해 한복판에서 한반도는 물론 미국 본토를 향해 핵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북한의 대형 전략원잠 위협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을 넘어 국제질서를 뒤흔들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이 이토록 심화되고 북한의 비대칭 전력이 대응 불가능할 수준까지 성장하는 동안 사실상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지 않으면 북한의 전략원잠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