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군인으로서 "주저앉는 것은 죄다"

입력
2025.03.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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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팔로마레스 핵 회수 작전

1966년 1월 스페인 남부 팔로마레스 해안 8km 지점 지중해 상공에서 공중 급유를 받던 미 공군 전략사령부 소속 B-52 폭격기가 급유기와 충돌했다. 급유기 승무원 4명 등 7명이 숨졌고, 약 2톤 무게의 1.1메가톤급 핵폭탄 4개가 사라졌다. 다행히 폭발은 없었지만 방사능 물질이 유출될 경우 심각한 인명 피해를 포함한 오염 사태가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핵무기를 반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스페인 당국과 군 기지 사용권을 획득한 미국으로서는 대형 외교 분쟁도 대비해야 했고 무엇보다 핵폭탄이 공해상으로 유실돼 구소련 등 적성국가에 넘어갈 가능성마저 있었다.

미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육상-해상 수색작전 끝에 3개는 사고 지역 인근에서 회수됐지만, 해상으로 떨어진 나머지 한 개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수색은 당시 미 해군 장교의 말처럼 “어둠 속, 건초 더미로 가득한 들판에서 바늘 구멍을 찾아야 하는 형국”이었다. 첨단 탐사 장비가 총동원됐고, 갓 건조돼 안전 점검조차 채 마무리되지 않은 유인 잠수정까지 투입됐다.

해난 사고 시 투입되는 해군 잠수사들도 당연히 동원됐다. 그중 한 명이 엘리트 군 교육기관인 해군 잠수-구조학교를 졸업한 최초의 흑인 잠수사 칼 브래셔(Carl Brashear, 1931~ 2006)였고, 그가 기적적으로 3월 17일 핵폭탄의 소재를 확인했다. 폭탄 회수작전 도중 리프팅 케이블이 끊기면서 왼쪽 다리 일부를 잃은 브래셔는 의족 재활에 전념, 1968년 잠수사로 복귀했고 1970년 흑인 최초의 ‘마스터 다이버’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해군-해병 메달과 공로훈장 등 여러 훈장을 받고 1979년 주임하사로 전역했다.

2000년 영화 ‘Men of Honor’는 그가 잠수학교에서 겪은 인종 차별과 졸업 후 활약, 부상 후 복귀 과정에서 겪은 시련 등을 거의 사실적으로 담은 영화다. 그는 "쓰러지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주저앉는 것은 죄"라는 말을 남겼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