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미국발 무역전쟁에 대응하고자 정부가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의 선도국이 되겠다는 취지다. 이 기금을 디딤돌 삼아 시중은행과 협력해 100조 원 이상의 첨단산업 투자를 끌어낸다는 방침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산업은행에 5년간 최대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은 반도체나 배터리(이차전지) 같은 첨단전략산업 및 국가전략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대기업 뿐 아니라 첨단전략산업 생태계 전반을 구성하는 중소·중견기업까지 폭넓게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최 대행은 "반도체, AI, 전기차 등 첨단기술 중심으로 산업 전반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주요국의 기술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급변하는 산업환경에서는 무엇보다도 시간을 선점해야 한다"며 도입 배경을 밝혔다.
기금은 3년간 17조 원 규모(남은 예산 12조7,500억 원)로 운영 중인 반도체 저리지원 프로그램에 37조 원가량을 추가해 조성한다. 정부는 이 기금을 기초로 산업은행·시중은행과 협력해 총 100조 원 이상의 지원을 끌어낼 계획이다. 기금이 후순위 출자 지원 등을 통해 리스크를 짊어지면, 시중은행이 돈 떼일 염려 없이 대출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권유이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장은 "반도체 생산공장(팹·Fab) 등을 세울 때 산업은행 기금이 후순위로 7.4%만 출자해도, 시중은행들이 인프라 펀드에 출자할 때 부담해야 하는 '위험가중치'가 기존 400%에서 100%로 낮아져 리스크가 줄어든다"며 "시중은행의 투자 유인이 커지기 때문에 기금의 2배인 100조 원의 지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고 설명했다.
재원은 매년 국회의 정부 보증 동의 한도 내에서 정부보증 첨단전략산업 기금채를 발행해 마련한다. 기금운영 자금은 산은이 자체 재원을 활용해 출연할 예정이다. 권 과장은 "50조 원은 지원 한도 개념이며 연간 지원 규모는 10조 원 정도 될 것"이라며 "자금 지원 속도를 보며 정부보증 한도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분투자 방식도 활용해 기업에 자금을 지원한다.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를 하거나 반도체 생산공장을 신설할 때 지원기업과 합작법인(JV)이나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일정 수준의 지분을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의결권은 행사하지 않는다. 권 과장은 "반도체 이외 첨단산업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자금도 최저 국고채 수준으로 초저리 대출 지원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기금을 신설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데다 조기 대선으로 흐를 경우 관련 논의는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달 산업은행법 개정안과 정부보증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법 통과시 조속히 지원을 개시할 방침이다.
강기룡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첨단전략산업 지원 의지들은 여야 막론하고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여야간 별다른 입장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산업은행법 개정안과 정부보증 동의안이 조속한 시일내 통과돼 연내 프로그램들이 가동돼 실제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