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마지막 심술’을 부리듯 전국에 폭설을 쏟아부었다. 봄 기지개를 켜던 꽃망울들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강원 양양 낙산사에는 고요한 설경 속에 막 피어난 매화가 하얀 눈송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붉은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흰 눈 속에 홀로 핀 붉은 매화는 심장을 흐르는 붉은 핏방울처럼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매서운 눈발이 몸에 닿을 때마다 붉은 꽃봉오리는 눈을 녹여내며 봄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매화를 사군자 중 으뜸으로 여겨 가까이 두고 보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는 추위 속에서도 고고하게 피어나, 험한 세상살이에 독야청청(獨也靑靑)한 선비의 모습과 빼닮았다. 특히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매는 혹한에 뿌리를 내리고 세찬 눈보라를 견디며 피어난 붉은 꽃으로 그 어떤 매화보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설중매는 그 연유로 온갖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상징한다.
지금 우리는 눈 속에 파묻힌 듯 답답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설중매처럼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때를 알고 피어난다면, 암울한 시대를 밝고 희망찬 미래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눈보라 속 설중매가 별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내듯 우리도 힘든 시기를 잘 헤쳐나간다면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눈을 뚫고 피어난 설중매가 주는 믿음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