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파국을 맞은 배경에는 2019년 싹튼 두 정상 간 오래된 악감정이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외교적 붕괴'는 트럼프가 거의 6년 동안 젤렌스키에게 품고 있던 악감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의 경멸감은 집권 1기 때인 2019년, 젤렌스키와의 첫 전화 통화에서 비롯됐다. 당시 트럼프는 이듬해 11월 미국 대선과 관련해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던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그의 차남 헌터를 둘러싸고 제기된 '우크라이나 내 사업 거래 비리 의혹'을 조사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응하지 않았고, 해당 통화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며 트럼프는 하원의 탄핵소추 대상이 됐다. FT는 트럼프가 이때부터 젤렌스키에게 원한을 품었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미국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해 9월 젤렌스키가 바이든 전 대통령의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州) 스크랜튼을 방문한 일도 트럼프의 분노를 촉발했다. 젤렌스키는 당시 대(對)러시아 전쟁에 필요한 포탄 공장이 있는 도시를 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당시 미국 공화당은 '선거 개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사실에 비춰 이날 백악관에서 벌어진 파국은 '예견된 결과'였다는 게 FT의 분석이다.
젤렌스키 역시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나 전쟁 상황 때문에 트럼프의 요구를 마냥 수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바르토시 치호츠키 전 우크라이나 주재 폴란드 대사는 "우크라이나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고 젤렌스키는 조만간 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그는 (미국·러시아 주도 종전 협상에) 굴복한다면 자신이 즉시 제거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무기 보유량은 미국의 지원이 끊길 경우 올해 말까지만 버틸 수 있는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대 강'으로 맞서는 두 지도자의 비슷한 성향이 이번 회담 결과로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WSJ는 젤렌스키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직후, 영국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의 망명 제안을 뿌리치고 푸틴에게 맞섰다는 점에 주목했다. 치호츠키 전 대사는 "두 '알파남(alpha male·우두머리 수컷)'이 충돌했다"며 "젤렌스키는 시스템이 아닌 본능에 충실하고, 복종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비슷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