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싸워 기후위기 돌파할 수 있을까… 바다 리듬에 맞춰 산다면?

입력
2025.02.21 12:00
11면
[인류세의 독서법]
제프 구델 '물이 몰려온다'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지난가을, 미국 플로리다주(州)의 에버글레이즈 습지를 찾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에버글레이즈는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땅이었다. 작은 키의 나무로 이뤄진 저지대 숲과 늪이 바다까지 이어졌고, 바다의 상승과 하강 리듬에 따라 상류의 습지도 잠겼다가 솟아났다. 하루 1m 정도의 느린 속도로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근 숲은 허리케인이 불면 부서지고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근 주목받는 환경 논픽션을 잇달아 내놓은 미국 언론인 제프 구델은 에버글레이즈 습지와 인접한 미국 마이애미와 뉴욕, 덴마크령 그린란드, 이탈리아 베네치아, 마셜제도 등 세계의 저지대를 다니며 해수면 상승에 관한 근사한 르포를 완성했다. '물이 차오른다, 빨리 대피하라!'고 재촉하는 뻔한 사이렌이 아니어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그보다는 기후위기에 관한 적응을 다루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업의 이윤 추구, 관료주의의 대응, 기후 부자와 기후 약자로 분절된 피해의 정치학을 파고든다.

책은 내용의 3분의 1을 에버글레이즈와 습지의 끝인 마이애미에 할애한다. 마이애미는 해수면 상승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재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연안의 부자 도시다. 그런데도 이곳에서는 고급 레지던스 건축 열풍이 불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초고층 아파트들은 주로 미국 억만장자들을 위한 주거지다. 이 책은 이러한 비이성적인 열풍에 대해서도 잘 설명한다. 기후변화 위험을 축소하는 부동산 개발업자, 매몰 비용을 담뱃값 정도로 여기는 대부호들, 부동산으로 세수를 충당하는 지자체는 왜 마이애미에서 모래성 쌓기가 계속되는지 보여준다. 바닷물이 몰려와 모래성이 무너져도 그들은 '다시 돈 벌 기회야, 그 뒤엔 즐길 기회지' 할 뿐이다.

베네치아는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산마르코 광장은 대조기(연중 밀물이 가장 높을 때)에 물에 잠긴다. 베네치아는 5세기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고트족을 피해 석호 위에 수상 문명을 건설한 도시다. 이제는 첨단 기술로 만든 개폐식 방벽인 '바다의 페라리'가 수위를 조절하며 도시를 지키고 있다. 인도양의 환초 섬 국가인 몰디브는 대규모 간척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매립 비용을 대기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로 했고, 해당 토지 면적의 70% 이상이 매립의 결과물일 경우, 토지 소유권까지 주기로 했다. 몰디브의 한 국회의원은 말한다. "이렇게 하면 몰디브는 중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 겁니다." 작은 섬나라의 생존 전략은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런가 하면, 플로리다 남부의 원주민 칼루사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물과 공존했었다. 홍수에 저항하지 않고, 물의 리듬에 맞춰 살았다. 에버글레이즈에 작은 운하를 건설하고 사냥하며 산 이들은 허리케인이 불면 미련 없이 집을 버리고 떠났다. 삶은 물처럼 고정되지 않고 수시로 뻗었다가 되돌아왔다. 애초 베네치아도 물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수상 문명을 일궜다. 운하를 만들고 수상의 삶으로 일상의 체제를 전환했다. 물이 차오르면 기껏해야 건물을 높였을 뿐이다. 지금처럼 대규모 방벽을 지어 물에 저항하는 것은, 육상 문명의 방식이지 수상 문명의 방식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물과 싸워 이기는 방식' 혹은 '물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자연을 이길 수 있을까? 파도에 몸을 맡기는 서퍼처럼, 물과 함께 살 수는 없을까? 앞으로 나아갔다가 바다가 밀려오면 후퇴하며 물을 타고 하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