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병동 5인실의 서사, 아빠와의 마지막 20일(1)

입력
2025.02.19 00:00
26면

새벽 3시 19분. 익숙한 알림음이 병동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암병동 10층 코드블루'. 얼마 뒤 한 여성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간병인들이 가장 기피한다고 알려진 병동. 이곳에 온 지 3일 동안 두 번의 임종을 목격했다.

위중한 환자들만 모여 있는 5인 입원실 한 귀퉁이에 아빠와 내 자리가 있다. 며칠 뒤면 진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호스피스로 전원해야 한다. 잠들기 전 아빠는 "얼마 안 남은 것 같지?"라고 물었다. 우리 가족은 최대한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순간 아빠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먹먹해졌다. 고민 끝에 할 수 있었던 말은 "더 오래 보려고 노력해 봐야지." 스킨십 한 번 없던 아빠를 어루만지며 다독이고, 소변을 받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로션을 발라주며 한마디 한마디 예쁘게 말했다. 그가 따뜻한 기억만 가득 담고 떠날 수 있기를.

아빠는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진통제에 취한 채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눈이 감기려 하면 힘겹게 눈을 부릅뜨고 '오늘을 버텨내리라' 다짐했다. 잠들어야 할 시간에 잠드는 것이 두려웠던 아빠. 그는 며칠째 섬망에 시달리는 앞자리 환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런 아빠의 눈빛은 곧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를 예상하며 두려워하는 듯했다.

폐암 말기인 앞자리 환자와 보호자는 매일 밤 실랑이를 했다. 24시간 홀로 환자를 돌보던 보호자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면 환자는 산소호흡기와 주사 바늘을 떼어내고 침대 아래로 내려오려 했다. 그럴 때마다 이 방의 모든 사람이 의료장비 알림음에 깨어나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는 3시간에 한 번씩 목에 호스를 넣어 가래를 뺀다.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동의를 얻고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팔을 묶기도 한다. 가래를 빼고 나면 듣는 이마저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조금은 안정적으로 돌아온다. "죄송합니다"라며 방 안 사람들에게 사과하던 보호자는 며칠 밤이 지나자 "제발 그만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울분과 설움 섞인 목소리로 환자를 다그쳤다. 홀로 견뎌야 할 한계를 넘은 듯했다.

보다 못한 간호사는 보호자에게 다른 가족을 부르라고 했다. 지금 당장 임종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자식들이 간호를 대신하길 권했다. 보호자는 아들이 타지에서 일하고 있고, 결혼한 딸은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해 병원에 오지 못한다고 답했다. 자식만은 이 상황을 겪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을까.

정신이 온전치 않은 환자를 24시간 간호하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다. 보호자를 보고 있자니 2년여 동안 홀로 아빠 병간호를 이어오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위기와 외로운 싸움을 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앞자리 환자는 보호자인 아내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불안한 듯 "미숙아(가명)"를 끝없이 불렀다. 보호자는 헐레벌떡 병실로 뛰어와 "미숙이 왔어"라고 말했다.

여느 때와 같이 모두가 잠들지 못하는 새벽. 진통제를 최고치로 투여받고 있는 옆자리 환자가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며칠째 모두를 힘들게 하는 섬망 환자에게 의외의 말을 건넸다. "거 힘내십쇼. 오늘도 못 주무셔서 어찌합니까"

나 또한 예민한 아빠가 병실 소음으로 매일 밤 잠들지 못해 애가 타던 중이었다. 옆자리 환자의 격려가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위한 응원같이 느껴져 눈물이 고였다.

긴 밤이 지나고 앞자리 환자의 가파른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해가 뜨고 나서야 눈을 붙였다. 30분쯤 지났을까. 의료장비 경고음이 울리고, 앞자리 환자는 다시 병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같은 병실에서 내 또래 아들을 간호하던 보호자는 문 앞에서 아들 몰래 울었다. 그의 아들은 아침 회진 시간 의사에게서 "장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방 모두가 표현하지 않은 채 삶의 끝을 준비하고 있다.

아빠가 떠난 지 5개월이 지났다. 위 내용은 호스피스로 전원 하기 전 암병동 입원실에서 쓴 글 일부다. 다음 편에는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쓴 글을 담아보려 한다.




김도담 지역가치창업가